아주 오랜만에 접속한다, 여기.
글을 쓰지 않았던 약 1년 동안 공부를 했었고 지금은 한 철의 공부가 끝나고 쉬는 중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아예 놓을 생각은 아니다. 남은 올해에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부딪혔다가 좋은 성과를 이루면 그 길로 곧장 걸어나가는 것이고, 아니면 내년에 다시 공부에 돌입할 생각이다.
2.
내가 마지막 소설을 썼던 게 언제였던가..
사소한 기록과 같은 습작 말고 제대로 글을 썼던 것은 2011년에서 2012년 겨울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팔랑팔랑 잘도 돌아다녔었고, 2013년에는 공부만 했으니까. 2014년 여름, 이번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이 글을 쓰다가 이번 이야기의 제목이 떠올랐다. 내용은 거의 1/3을 썼는데 제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이었는데.. 떠오르는 제목들은 죄다 촌스럽거나 의미 없는 것들이라 탐탁치 않았었는데.. 으헤헤. 좋은 제목이 떠올랐다.
3.
8월의 마지막 금요일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은 매년 한 번씩 돌아오지만 2014년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은 오직 오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삶이 아주 많이 섭섭하고 애달픈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4.
요즘은 향수를 옷깃에 살짝씩 바르는 게 그렇게 좋다. 예전에는 1년에 몇 번, 좋은 날이 있을 때 기분내려고 꽃다발을 사듯이 가끔씩 선물로 들어오는 향수를 모으는 게 그렇게 좋았다. 인공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그저 향수를 사고, 선물 받고, 모은다는 데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다. 향수나 꽃 선물은 어쩐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황홀감을 주지 않나. 그랬는데 이제는 향수를 내 몸 어딘가에 발라서 체취로 남기는 일에 마음이 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일까.
5.
내가 십대였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
뚱뚱하든, 날씬하든, 얼굴이 예쁘든, 못 생겼든, 개성이 있든, 아주 평범한 학생이든
십대의 아이들은 모두 예뻐보인다. 아주 예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 중 하나이다. 어른들은 십대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했던 학생 드라마에서 크게 회자되었던 시 한 구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에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학생들이 저마다 거리를 걸으며 하하 웃는 모습만 봐도, 그저 교복을 입고 화장기 하나 없는 그 풋풋한 얼굴로 돌아다니기만 해도 나는 그들이 예뻐 보인다. 그들을 통해 나의 시절을 회상하며 아름다움을 찾는다기보다는 그저 그 시절의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세상에 갓 태어나서 호기심이 요동치고 있을 것 같은 그 가슴 속 깊이가 참 부럽다. 누군가가 나에게 청춘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대번에 '호기심'과 '첫경험'이라는 키워드를 꺼낼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소용돌이'.
어쩌면 그 시절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채워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어른들이란 십대 시절의 잠재력이 가능성으로 표출되는 시기이지 않나. 무언가 자신의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발산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그런 방식으로 세상 앞에 생존 신고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시기.
음. 그런데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갑과 을의 관계에 국한되어 자신의 세계를 좁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의 삶이 회사의 굴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회사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로 가치관과 자아관의 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모두가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 말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채워서 나라는 사람의 매력을 발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오래 오래 보아도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