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일 토요일

여행을 다녀왔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린 1박 2일의 짧은 여행. 식후에 나온 디저트를 단숨어 집어삼켜버리 듯 다시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동네라고 느껴질 만큼 친숙한 전주. 이번이 벌써 네번째다. 지금까지 나는 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전주에 다녀왔다. 처음은 혼자,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기차여행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나에게 이번 여행은 과연 보통의 여행은 아니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그리고 마음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물론 나와 함께 여행을 간 친구가 이 여행을 임한 마음가짐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하였다. 사실 여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마음수련이라고 봐도 무방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나는 아주 많은 감정들 속에 뒤섞여 있었다. 내가 당면한 상황들, 그리고 나를 향한 내 안의 두려움들이 아주 뒤섞여있었다.
 
 
 
 
 
 
 
 
올해 1월과 2월. 나는 반복되는 트라우마로 인해 가족들과 심리적으로 멀어졌으며, 하려고 하는 일은 자꾸만 꼬이고 잦은 실패를 낳는 통에 극악의 좌절감을 맛보았고, 어떻게 일이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나와 유일하게 심리적인 교감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은 일이 생겨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 바람에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언제나 온전한 혼자가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나는 직업을 갖기로 마음 먹었다.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해가면서까지 나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나를 의지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심리적인 자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울음을 내색하지 않고 괜찮은 척 하는 일은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해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경제적인 자립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나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고자 마음 먹었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배신' 혹은 '패배'라는 단어를 붙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근래에 내가 겪고 있는 감정들을 찬찬히 풀어내서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 결심이 '배신'이나 '패배'라는 단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자괴감이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의 의지가 꺾여서 선택한 결심도 아니며, 타인의 권유에 설득당한 결과도 아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새로운 국면 속에 넣고 싶었다. 그동안, 이십대라는 언덕의 절반을 넘어온 지금. 나는 내 마음대로 나의 시간을 조절하며 살았다. 흐르고 싶으면 흘렀고 흐르고 싶지 않을 때는 물길을 막았다.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조금 더 치열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혹은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성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를 경계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있지만, 완전히 돌파하지 못한 것조차도 나의 성격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제야 나는 인정을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이게 나의 삶이고, 이게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삶을 인정함과 동시에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국면 속에 인생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지, 지금과 같은 세계가 유지될지, 내가 그 세계에 잘 맞는 사람일지 에 대한 고민들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면이자 위기이기 때문이다.
 
 
하하.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심리적인 위기 상황은 넘겨버렸다. 살아가면서 이제 더 이상 심리적으로 괴로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최하의 감정을 맛보고 나니 최상의 감정에도 행복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진심으로 웃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대 후반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영화 <베를린>을 봤다. 너무도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더니 왁자지껄한 환경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고 15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불빛을 손에 들고 버젓이 영화관을 들어오던 사람들. 영화가 상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하던 사람들. 여기 저기서 울려대던 전화벨, 그리고 번쩍거리는 카카오톡. 영화는 무조건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봐야만 잘 보이는 나에게 이런 환경은 거의 고역 수준이었다. 그래도 뭐.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북적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새로운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잘 다듬어진 한국 액션 영화가 있었나 싶었다. 잘 다듬어졌으며 세련됐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액션과 몸과 몸이 부딪치는 순간을 리드미컬하게
잘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 영화의 정수이다.

앞서 영화를 봤던 친구가 대사가 많고 빨라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 영화를 보는데 내용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의 큰 틀이 북한, 한국,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들의 잇속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나라별 관계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해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극의 분위기만 잘 따라가도 내용은 자연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베를린>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예쁜 화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히 예쁘다기 보다는 예쁘게 담기 위해서 노력한 장면들이 많다. 첫 시작에 부감샷으로 평화로운 도시 베를린의 풍경을 담고 한쪽 귀퉁이에 한석규가 하정우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하정우와 류승범가 맑은 하늘과 햇살을 배경 삼아 대결을 벌였다. 이런 예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유난히 불쑥불쑥 놀랐지만, 실제로 영화의 감정선이나 진행에 방해 되는 요소는 전혀 없었기에 나쁘지 않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쁜 화면들의 연장선일수도 있는데 남성성이 강조되는 묵직한 이 영화에 간간이 여성스러운 면모들이 튀어나온다. 힘있고 강한 남성성을 부드러운 이음새로 이어 유하게 만들어준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꽤 귀여운 면들도 많다. 결말만 보아도 그러하다. 본래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대신 복수를 다짐한 듯 비행기 표를 끊는 하정우가 투 비 컨티뉴 자막을 대신할 때 나는 귀여워서 그만 풋 웃고 말았다. 속편을 기대해달라고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해둔 다부진 다짐 같아서 귀여웠다. 실은 자기 아들을 죽인 하정우에게 분노하는 명계남 님의 모습도 귀여움에 한 몫 하신 것 같다.

하정우, 류승범, 한석규, 전지현.
하정우의 연기는 늘 겉은 들끓어도 속은 침잠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어떤 감정의 연기하든지 간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반해 류승범은 일정한 선이나 무게 없이 진짜 제 멋대로 연기를 하는데 매 순간 또 다른 류승범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어떤 씬에서도 그는 똑같지 않다.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지만 막상 뜯어보면 어느 순간에서도 그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의 연기를 보고 예측불허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의 연기는 예측할 필요가 없는 연기이다. '지금'의 순간만 있기 때문에 예측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석규를 생각하면 트렌치 코트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잘 어울리셨다. 소위 테가 난다, 라는 말이 아니라 한석규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분위기가 이 영화 속의 역할이 입은 트렌치 코트와 잘 어울렸다. CIA에 있던 동료가 죽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억제하고 다시 솟아오르는 분노에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고 낮게 속삭이며 분노를 표출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한석규라는 배우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잘 단련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지현. 그녀는 틀림없이 매력적인 배우이다. <도둑들>에서 발칙하던 그 배우가 <베를린>에서는 순정적이며 청순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그녀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녀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것은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대사를 누가 쳐주느냐에 따라서 그녀의 연기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아직 그녀가 스스로 상대배우와의 관계에서 혹은 자신의 역할과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녀는 항상 당김을 당하는 쪽에 있어서일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