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3일 일요일

영화 <베를린>을 봤다. 너무도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더니 왁자지껄한 환경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고 15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불빛을 손에 들고 버젓이 영화관을 들어오던 사람들. 영화가 상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하던 사람들. 여기 저기서 울려대던 전화벨, 그리고 번쩍거리는 카카오톡. 영화는 무조건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봐야만 잘 보이는 나에게 이런 환경은 거의 고역 수준이었다. 그래도 뭐.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북적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새로운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잘 다듬어진 한국 액션 영화가 있었나 싶었다. 잘 다듬어졌으며 세련됐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액션과 몸과 몸이 부딪치는 순간을 리드미컬하게
잘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 영화의 정수이다.

앞서 영화를 봤던 친구가 대사가 많고 빨라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 영화를 보는데 내용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의 큰 틀이 북한, 한국,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들의 잇속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나라별 관계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해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극의 분위기만 잘 따라가도 내용은 자연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베를린>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예쁜 화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히 예쁘다기 보다는 예쁘게 담기 위해서 노력한 장면들이 많다. 첫 시작에 부감샷으로 평화로운 도시 베를린의 풍경을 담고 한쪽 귀퉁이에 한석규가 하정우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하정우와 류승범가 맑은 하늘과 햇살을 배경 삼아 대결을 벌였다. 이런 예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유난히 불쑥불쑥 놀랐지만, 실제로 영화의 감정선이나 진행에 방해 되는 요소는 전혀 없었기에 나쁘지 않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쁜 화면들의 연장선일수도 있는데 남성성이 강조되는 묵직한 이 영화에 간간이 여성스러운 면모들이 튀어나온다. 힘있고 강한 남성성을 부드러운 이음새로 이어 유하게 만들어준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꽤 귀여운 면들도 많다. 결말만 보아도 그러하다. 본래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대신 복수를 다짐한 듯 비행기 표를 끊는 하정우가 투 비 컨티뉴 자막을 대신할 때 나는 귀여워서 그만 풋 웃고 말았다. 속편을 기대해달라고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해둔 다부진 다짐 같아서 귀여웠다. 실은 자기 아들을 죽인 하정우에게 분노하는 명계남 님의 모습도 귀여움에 한 몫 하신 것 같다.

하정우, 류승범, 한석규, 전지현.
하정우의 연기는 늘 겉은 들끓어도 속은 침잠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어떤 감정의 연기하든지 간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반해 류승범은 일정한 선이나 무게 없이 진짜 제 멋대로 연기를 하는데 매 순간 또 다른 류승범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어떤 씬에서도 그는 똑같지 않다.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지만 막상 뜯어보면 어느 순간에서도 그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의 연기를 보고 예측불허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의 연기는 예측할 필요가 없는 연기이다. '지금'의 순간만 있기 때문에 예측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석규를 생각하면 트렌치 코트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잘 어울리셨다. 소위 테가 난다, 라는 말이 아니라 한석규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분위기가 이 영화 속의 역할이 입은 트렌치 코트와 잘 어울렸다. CIA에 있던 동료가 죽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억제하고 다시 솟아오르는 분노에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고 낮게 속삭이며 분노를 표출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한석규라는 배우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잘 단련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지현. 그녀는 틀림없이 매력적인 배우이다. <도둑들>에서 발칙하던 그 배우가 <베를린>에서는 순정적이며 청순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그녀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녀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것은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대사를 누가 쳐주느냐에 따라서 그녀의 연기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아직 그녀가 스스로 상대배우와의 관계에서 혹은 자신의 역할과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녀는 항상 당김을 당하는 쪽에 있어서일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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