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30일 목요일
어제 스페인 감독인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퍼펙트 크라임을 보았다. 보는 내내 유쾌해서 절로 신이 났다. 상황 속에서 순간 튀어나오는 위트있는 유머라기 보다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스토리 속에서 묻어나는 유머가 매끈했다. 그래서 좋았다. 코믹영화가 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씬마다 끼워넣는 억지의 유머가 아닌 영화 자체가 가진 유머의 힘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라파엘과 로우데스의 전복과 전복을 거듭하는 관계 또한 웃음의 포인트였고. 무엇보다 라파엘과 로우데스가 등장하는 그 장소가 사치와 허영의 공간인 백화점이라는 것과, 백화점에서 태어나 백화점에서 죽겠다고 말하는 라파엘이 매일 밤 머무는 공간 또한 백화점이라는 점은 정말 이 영화의 백미였다. 그것이 라파엘의 모든 것을 말해주었으니까. 그는 직장에서 미녀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밤이 되면 그녀들과 백화점 안의 탈의실이나 가구점에서 호화로운 섹스와 허영스러운 와인잔을 기울이며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남성복 매장의 남자가 매출이 높았던 자신 대신으로 승진을 하고 라파엘은 그와의 다툼 끝에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그의 시체를 없애기 위해 라파엘은 애를 쓰지만 결국 그의 범죄는 같은 회사의 못생긴 여직원 로우데스에게 들키면서 완벽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라파엘은 로우데스와 인연을 만들어 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정말 폭소다. 예전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심지어는 같은 곳에서 3년이나 일했으면서 라파엘은 로우데스의 존재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외모의 로우데스를 바라보는 것만도 라파엘은 괴로웠지만, 그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로우데스의 괴상한 성격. 그녀의 가족들 또한 그녀와 다름이 없다. 임신을 했다고 말하는 8살짜리 동생과 세상 모든 작은 물건들을 모으는 것이 취미이고 늘 졸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그녀와 쏙 닮은 엄마 까지. 그녀는 라파엘을 라파엘로 두지 않는다. 로우데스의 라파엘로 만들고 싶어하며 그에게 집착하며 구속한다. 그녀의 틀 안에서 괴로워하던 라파엘은 그녀를 향한 완전한 범죄를 하고 싶어하고 두번째의 범죄에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로우데스의 품에서 벗어난 그는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예전의 생기어렸던 표정은 어디가고 축 처진 표정으로 작디 작은 가게 안에서 넥타이를 파는 그. 특별해지고 싶었던 그의 꿈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그의 초라한 모습과 반대로 로우데스는 자신이 기획한 삐에로 패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예전의 못생긴 로우데스가 아닌 한 시대와 패션을 풍미하는 우상의 존재로 탈바꿈한다. 화려해진 로우데스와 초라해진 라파엘의 다시 한번의 만남, 그 전복의 만남이 딱 맞아 떨어지는, 누군가가 미리 예정해 놓은 장난과도 같았다. 인간이 가장 극적으로 찌질할, 일부분으로 만든 듯한 캐릭터들의 숨쉬기가 너무나도 특별해, 굳이 스토리가 없었어도 재미있었을꺼 같다. 그 정도로 캐릭터가.... 난 이런 짖꿎으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들을 끌고 가는 영화들이 참 좋더라고. 재미있었다. 정말 재미있었다는 말에 모든 의미들이 꽉 들어차도록 재미있었다. 이글레시아 감독의 야수의 날 또한 볼 예정이다. 정말이지 기대 만빵!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이젠 누구에게 내가 플룻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부끄럽다. 손을 놓은지 이미 오래인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때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라면 정신 사납게 학교를 가로지르고 뛰어다니던 내가 얌전히 플룻을 다루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만에 잡아 본 플룻은 이제 소리가 나지 않았고, 괜히 속상하고 또 아쉬워서 플룻에 대한 미련이 머릿 속을 떠나질 못하고 있다. 새로운 악기를 장만하기엔 수중의 돈이 넉넉치 못해서 속상함은 시간이 지날 수록 배로 불어나고 있고, 마우스를 쥔 나으 오른손은 말을 듣지 않고 더 좋은 악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저께는 중학교 때 나와 함께 플룻을 연주 했었던 친구가 아직도 플룻을 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나에게는 이미 낯선 이름이 되어버린 플룻을 그 아이가 아직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음 뭐랄까 내가 묘한 질투심과 동시에 부러움에 사로잡혔다고 할까?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때문에(결과적으로 열심히도 하지 않은 공부였지만) 플룻에 손을 놓았었는데 반해 그 친구는 여전히 악기를 다루었다는 건, 그 아이가 나보다 더 많은 감성과 경험을 악기로써 느꼈다는 걸 뜻하잖나. 이상한 시기심이 생겼다. (참 이럴 때보면 나도 욕심이 꽤나 많은 아이인데.. 잘 드러나질 않아) 인생에 있어서 분명 특정의 것들이 발달할 수 있는 특정한 시기가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학생들을 공부에만 매달리게 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교육과정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나에게 이런 사소한 비교는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구!! (T.T)
어쨋거나. 그 아이에 관련된 말들은 뒤로 제쳐두고서.
난 새 플룻이 갖고 싶다고! 소리만 나면 넙죽 절이라도 하겠소이다, 고맙다고.
그 정도로 난 간절하다고!!
그저께는 중학교 때 나와 함께 플룻을 연주 했었던 친구가 아직도 플룻을 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나에게는 이미 낯선 이름이 되어버린 플룻을 그 아이가 아직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음 뭐랄까 내가 묘한 질투심과 동시에 부러움에 사로잡혔다고 할까?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때문에(결과적으로 열심히도 하지 않은 공부였지만) 플룻에 손을 놓았었는데 반해 그 친구는 여전히 악기를 다루었다는 건, 그 아이가 나보다 더 많은 감성과 경험을 악기로써 느꼈다는 걸 뜻하잖나. 이상한 시기심이 생겼다. (참 이럴 때보면 나도 욕심이 꽤나 많은 아이인데.. 잘 드러나질 않아) 인생에 있어서 분명 특정의 것들이 발달할 수 있는 특정한 시기가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학생들을 공부에만 매달리게 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교육과정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나에게 이런 사소한 비교는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구!! (T.T)
어쨋거나. 그 아이에 관련된 말들은 뒤로 제쳐두고서.
난 새 플룻이 갖고 싶다고! 소리만 나면 넙죽 절이라도 하겠소이다, 고맙다고.
그 정도로 난 간절하다고!!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현재 미니홈피와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여기, 구글 블로그
사이버상의 커뮤니케이션 입구를 세개를 열어 놓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미니홈피는 관계를 맺는다기 보다는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고 있고, 네이버 블로그는 사진과 간간이 글을 올리는 용도, 구글 블로그는 깔끔하게 글만 올리기에 좋으니 글만 올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뭐, 막상 넷상에 뭔가를 올리고자 할 때 생각과 판단을 하고서 올리기보다는 기분에 따라 들어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서 올리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데 구글은 사진 올리기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사진은 일부러라도 기피하곤 하는데. 오늘은 사진을 올리고 싶네. 셔터를 누르는 건 내 손이 아니라 마음이다, 라는 말을 오늘 아침에 짧게 읽던 책에서 보았다. 마음으로 찍은 사진은 아무리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아도 아름다워보이고 누군가로 하여금 그 사진이 만들어내고 있는 감정과 분위기에 감동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아직 그 정도로 사진기와의 일체감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저 말이 내가 사진기를 놓지 않는 한 내가 말하는 좋은 사진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메일을 보내러 구글에 들어왔다가 문득 블로그를 너무 오래 방치해둔건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하하. 사실 요즘은 학교에서 쏟아지는 과제들 수습하기에도 바쁘다. 작년에 전과를 하자마자 과감히 휴학을 해버리곤 학과공부를 미뤄둔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휴학했었던 1년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분명 나는 빠른 속도로 걷는 걸음보다 불안정한 내 나이와 상황을 가늠하여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게 더 현명할 것이라 여겼으니까. 확신보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인생을 살아가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몸소 깨닳았으니, 과연 그 1년 동안의 일들을 숫자로 나열하는 건 쓸모 없는 일이라 본다. 덕분에 이렇게 복학한 늙은이임에도 불구하고 학과 공부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지만 나름의 쏠쏠함이 있다. 누군가 나를 채찍질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나를 채찍질하며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래 나라는 사람이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잘하려고 덤벼든다기 보다는 남들보다 부족함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앞서 나가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메꾸어 감에 따른 쏠쏠함이 있다, 요즘은.
하지만 과제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의 자유는 자꾸 없어진다. 하지만 덕분에 쓸모 없는 곳에 허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음은 또 행복한 일이다. 자유가 온전한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유의 시간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여야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긴 자유로웠는데 그 자유가 과연 나를 향한 자유였나 아니면 태만의 자유였나,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오늘 아침은 모닝커피를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멍하다.
하지만 과제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의 자유는 자꾸 없어진다. 하지만 덕분에 쓸모 없는 곳에 허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음은 또 행복한 일이다. 자유가 온전한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유의 시간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여야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긴 자유로웠는데 그 자유가 과연 나를 향한 자유였나 아니면 태만의 자유였나,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오늘 아침은 모닝커피를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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