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2일 금요일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1년이라는 과거의 시간이 흐른만큼 나는 미래의 1년을 내다본다. 아무렴 그것이 허무한 일인 줄 알면서도 넘어다보게 된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미래를 넘어보는 것은 그리 허무한 일이 아닐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나는 또 다시 1년을 살아갈 것이다. 그 1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는 내 상상력에 뿌리를 내린 꿈의 나무만이 알겠지. 오늘 아주 작고 어린 묘목을 사와야 겠다.

우리집엔 객식구가 6명 있다. 작은 송사리 다섯 마리와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송사리보다 더 크고 성격도 거친 물고기 한 마리.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었던 어느 날, 그것들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혹은 인연에 이끌려 혹은 갈 곳이 없어 얼떨결에 우리집으로 떠밀려 왔기에 나는 그들을 객식구라 부른다. 작고 투명한 원통의 플라스틱 안에 담겨져 물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던 그 아이들은 이내 내 안의 연민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그것들을 책임지겠노라 크게 선언했었다. 한 마디로 연약한 객식구들의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중 어느 주인공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 그러했듯, 나 또한 그것들을 연민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다. 손 끝에서 전해지던 그들의 아픔은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되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에는 어항에 코를 대기에도 아찔했던 물 비린내에 점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봄에는 알을 잔뜩 품고서 어항을 돌아다니는 그들을 보고선 뿌듯함을 가지기도 했다.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 결국 아기 물고기는 보지 못했지만) 어쩌다보니 객식구가 식구가 되었고 물 비린내를 맡으며 그것들이 물 속을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멍하게 넋을 놓고서, 마음의 짐들을 놓고서 그것들이 헤엄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절로 시원해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물을 갈아주었더니 저들도 기분이 좋은지 힘차게 물을 박차고 다닌다. 식구라니. 식구. 무언가와 함께 산다는 것에, 그리고 누군가가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에 귀찮음을 느꼈던 나에게(비록 여전히 귀찮음을 느끼지만) 식구라는 단어는 생소하지만 봄의 새순이 돋아나는 느낌에 마음이 온화해진다. 내 마음 속의 식구라니.

무얼하며 살아가나 고민이 든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그것들이 과연 돈벌이가 될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것은 일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언제나 차후의 문제이지만 가끔 걱정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놓칠 줄도 알아야함을 나는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익히 들어왔지만 막상 내 앞의, 내 선택이 되었을 때 나는 참 많이 아쉬워하고 또 기뻐할 것 같다. 시간을 조금 앞으로 걸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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