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아직도 창 밖에선 매미가 울고 있다. 나는 벌써 팔이 긴 티셔츠를 입었는데 말이다. 어제는 일부러 모기향을 켜지 않고 잤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모기가 내 피를 빨아 먹는다 한들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어쩌면 연민에).

멀리서 들려오던 매미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혹시 나도 모르게 구멍난 방충망 사이로 들어왔을까봐. 방금 전에도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베란다로 조심스럽게 갔었지만 방충망은 이상무. 매미는 콘크리트 벽에 붙어 울고 있었다. 뭔가 서글퍼졌다. 쫓아내지도 못하고 있는데 우는 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자꾸 내 근방에 있는건 아닌가 주위를 살핀다.

길었던 방학이 이제 거의 일주일하고 절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영어 공부에는 다소 소홀했지만 하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를 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안그랬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방학을 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턴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릴 수 없는 현실에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응시해야 한다. 이제부터 어떻게 지낼지가 더욱 중요한 지금 이 시점.

사실 난 내가 현실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려운 기분이 든다. 현실주의자가 되더라도 현실순응자는 되지 말아야지. 적당히 세속적인 사람은 될지언정 현실 불가능한 이상적인 미래를 꿈꿔야지. 현실 불가능하기에 아름다운 미래를 이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2011년 8월 10일 수요일

가족들이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매우 애정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를 숨기고서 등을 떠미는 걱정일 때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현실감을 체감하는 온도가 남들보다 조금 낮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번번히 걱정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 아래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른 나이에 (잠깐) 사회 생활을 했었던 오빠가 사회의 잔혹함에 너무 빨리 적응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며, 어쩌면 가족들이 보는 나는 아직도 고3 수능을 마치고 어떤 대학에 갈지를 몰라 방황했었던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어쨋든 가족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세상으로부터 소심한 반항을 하는 아이이다.

나를 오해하는 가족들에게 해명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들의 말을 극구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무리 나와 의견이 다른 말일지만 그들의 말 어느 구석에 묻어 있는 나에 대한 애정을 나는 거부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가끔 그들과의 대화에서 듣곤 하는데 그 수확 또한 나름 쏠쏠하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내가 아직도 유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 슬프게 한다.

고3 수능을 치고서 어떤 대학에 갈지를 몰라 고민했었던 열아홉살의 내가 생각난다. 그 때 나는 대학교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위 이유없이 속 편한 부류들 중 하나였었다. 내가 속이 편한 대신 엄마와 오빠가 전전긍긍이었지만 말이다. 오빠는 나보다도 열성적으로 재수학원을 뛰어다니며 내가 갈 수 있는 대학 상담을 자처하였고 나는 그저 오빠가 따다주는 열매를 먹기에 바빴다. (물론 그 시절 오빠의 종종걸음에 비하면 나는 천하태평이었지만) 오빠의 열성 덕분이었는지 나는 성적보다 좋은 대학의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기를 택했었다. 아무런 쾌감도, 열정도 없는 학교에 발 디디고 있을 자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에 나는 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일찍이 자아 정체성을 확립시켜주지 못한 학교의 제도와 부모님들 탓을 많이 했었다. 물론 당시 나는 나의 불평이 타당한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불평은 내가 따 먹었었던 열매들이 내 손으로 직접 얻은 수확물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애정을 들여 키우지 않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행위의 무의미를 나는 자각하진 못했지만 느끼고는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만약 내가 다시 가족들이 따다 주는 열매를 그대로 받아 먹는다면 나는 스무살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서 패배감을 느끼곤 지레 물러서고 말 것 이다. 내가 내 스스로 나무를 길러 열매를 수확해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차곡 차곡. 내 안의 나무를 길러야겠다.

2011년 8월 5일 금요일

이번주 주말도 곧장 지나가 버릴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결국 이번 방학도 한 것 없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 같다는 허무감이 감돈다. 하하. 그래도 올해 처음 계획했었던 일 하나는 잘 성사된 것 같아 뿌듯하다. (물론 그게 다시 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겸허히 받아들여야하는 시간이자 서툰 나를 다듬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음주면 이제 2학기 시간표를 짜야될 것 같다. 이번 학기는 특히나 설레인다. 나도 이제 복수전공을 듣는단 말이지. 버거웠던 영어 전공이 줄어서 좋긴 하다. 근데 생각보다 쉽진 않을 것 같다. 잘 해내야지.


또, 다음주엔 부산 국제 어린이 영화제가 열린다. 호기심에 홈페이지를 살폈는데 아이들이 만든 단편 영화도 상영한다는 소식에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아이들의 눈으로 만든 영화는 어떨런지. 궁금하다. 왠지 무질서, 무규칙 안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창의성을 볼 수 있을 것 같군. (이번 어린이 영화제에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자'도 상영한다지. 그걸 다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니. 감동이야 흑흑)


다다음주는 집 도배를 새로하기로 했다. 옅은 연두색을 생각하고서 인테리어 집에 갔었는데 그닥 끌리는 벽지가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충동 선택한 연노란색 벽지가... 기대된다. 두근두근. 방이 어떻게 바뀔지. 그 방에 앉아 있는 나는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생각보다 벽지의 색감이 사람의 기분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걱정 반, 기대 반.


그리고 다다음주에는 수강신청이 있지. 폭발적인 클릭질을 선보여야 할 것 같군. 매번 굳은 결의를 다지지만, 난 언제나 그랬듯 수강신청 패배자일뿐. 허허.


그리고 다다다음주에는 서울에 다녀올 것 같다. 으허허. 이번 달에는 뭔가 꽉 차있구나.

2011년 8월 2일 화요일

마룬 5의 Happy Christmas (War is over)
존 레논의 You And Whose Army
김윤아의 검은 강

개인적으로 맑고 청아하면서도 자신만의 굵은 줄기를 가지고 있는 김윤아의 목소리는 좋아하는 편이나 그녀의 노래를 그리 즐겨듣진 않는다. 아니, 즐겨 듣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듣고 있자면 가슴이 침체된다. 심장이 뛰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든다. (신나는 노래에서도 종종 느껴지곤 하지) 하지만 오늘은 꼭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 오늘 아침에 영화 '그을린'을 보고 왔으니까. ('그을린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작년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당시의 제목은 '그을린'이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오니 '그을린'이란 제목에 더 애정이 간다.

존 레논의 노래는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됐다.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만 한 세번 정도 나왔던 것 같다.

마룬5 의 Happy Christmas는 정말 좋아하는 노래. 한 가지 음악에 꽂히면 수도 없이 반복해 듣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낯선 음악을 접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 노래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저 괄호 안의 부제목에 한껏 끌려 있었다. 노래를 만든 사람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른 사람 모두 마음씨가 예쁘리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했었다. 물론 가사의 마음 씀씀이도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일이 행복하고 또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이 노래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도 참 좋아하는 노래들 중 하나)



오늘 봤던 영화의 리뷰는 이 노래 세곡들로 충분할 것 같다. 단지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