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0일 수요일

가족들이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매우 애정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를 숨기고서 등을 떠미는 걱정일 때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현실감을 체감하는 온도가 남들보다 조금 낮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번번히 걱정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 아래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른 나이에 (잠깐) 사회 생활을 했었던 오빠가 사회의 잔혹함에 너무 빨리 적응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며, 어쩌면 가족들이 보는 나는 아직도 고3 수능을 마치고 어떤 대학에 갈지를 몰라 방황했었던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어쨋든 가족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세상으로부터 소심한 반항을 하는 아이이다.

나를 오해하는 가족들에게 해명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들의 말을 극구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무리 나와 의견이 다른 말일지만 그들의 말 어느 구석에 묻어 있는 나에 대한 애정을 나는 거부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가끔 그들과의 대화에서 듣곤 하는데 그 수확 또한 나름 쏠쏠하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내가 아직도 유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 슬프게 한다.

고3 수능을 치고서 어떤 대학에 갈지를 몰라 고민했었던 열아홉살의 내가 생각난다. 그 때 나는 대학교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위 이유없이 속 편한 부류들 중 하나였었다. 내가 속이 편한 대신 엄마와 오빠가 전전긍긍이었지만 말이다. 오빠는 나보다도 열성적으로 재수학원을 뛰어다니며 내가 갈 수 있는 대학 상담을 자처하였고 나는 그저 오빠가 따다주는 열매를 먹기에 바빴다. (물론 그 시절 오빠의 종종걸음에 비하면 나는 천하태평이었지만) 오빠의 열성 덕분이었는지 나는 성적보다 좋은 대학의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기를 택했었다. 아무런 쾌감도, 열정도 없는 학교에 발 디디고 있을 자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에 나는 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일찍이 자아 정체성을 확립시켜주지 못한 학교의 제도와 부모님들 탓을 많이 했었다. 물론 당시 나는 나의 불평이 타당한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불평은 내가 따 먹었었던 열매들이 내 손으로 직접 얻은 수확물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애정을 들여 키우지 않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행위의 무의미를 나는 자각하진 못했지만 느끼고는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만약 내가 다시 가족들이 따다 주는 열매를 그대로 받아 먹는다면 나는 스무살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서 패배감을 느끼곤 지레 물러서고 말 것 이다. 내가 내 스스로 나무를 길러 열매를 수확해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차곡 차곡. 내 안의 나무를 길러야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