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랬다. 나는 생각치도 못했던 여러 장소에서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외로움은 무관심 때문이다. 나의 외로움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고로 나의 외로움은 수치이다. 무관심은 안과 밖을 따로 구분짓지 않고 언제나 불쑥 불쑥 솟아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했고 나의 주변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나를 소외시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 자신이 이런 외로움을 느낄 줄 모르고 모든 것들에 무관심을 일관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니, 어쩌면 유리처럼 약한 나의 이 감정을 대책없이 신뢰했던 나 자신에 대해 자책감이 든다. 나는 왜 이토록 외로워져야 하나. 나는 왜 이토록 외로운 감정을 생성한 것일까. 그것도 무식할 정도로 자의적으로 말이다.

푸념에 불과한 말들이 아닌 근본적인 말들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왜 이토록 타인들을 배척하는 것인가. 나는 왜 타인들이 나의 인생과 살결을 부대끼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타인들을 향해 웃음을 던지는 것일까. 만인에게 웃음은 단지 편협한 감정에 불과한 것인가. 물론 이 경우의 웃음은 호감을 사기 위한 웃음을 모두 제한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정지된 웃음은 아무런 뜻 없는 표정만을 위한 표정인가. 모르겠다. 나는 타인들이 좋지도 싫지도 않다. 나는 나 자신 또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탈을 쓰고 앉아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한낱 밤거리를 떠도는 영혼일 뿐인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도대체 내 안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손으로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면서도 사람들이 나에게서 발길을 돌리는 행위를 야속하게 생각한다. 모순적이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은 이질적이지만 현실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을 보며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웃음은 표정을 위한 표정일까 아니면 감정에 동한 표정일까. 사실 나의 이런 질문들은 부질없다. 웃음이 유효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왜, 도대체 왜, 이런 외로운 질문들을 한단 말인가. 질문이라 하기엔 너무도 과분한, 그저 황량한 말 뿐인 말을 나는 도대체 왜 하고 있는 걸까. 마음이 문득 외롭다. 이는 날씨가 추워져서가 아니다. 우연히, 아주 우역히 추웠던 내 마음이 겨울과 동하였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글을 쓰지 않은 근 며칠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살아가다는 것은 곧 끊임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니, 제 아무리 미동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속에 숱한 사건들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음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일상을 그리고 나의 감정을 글로 옮기지 않은 근 며칠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차곡 차곡. 그리고 연속적으로, 때론 불연속적으로.

하지만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여전히 멍청한 상태이다. 어쩐지 나의 정신은 항상 0점에 머물러 있다. 플러스적인 감정도, 마이너스적인 감정도 없이 항상 0점에 머물러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었던 감정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의 외로움은 거기서 시작된다. 내가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무함.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거리는 기억들.

그런 말을 했었다. 난 무언가에 얽매이는 게 너무 싫다고. 얽매이는 게 싫다고. 내 말을 듣고 있던 누군가가 대답했다. 얽매인다는 건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경험이고, 그때만 유효한 감정이잖아. 나는 답하였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얽매이는 것이라고.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얽매게 되는 것이라고. 아니,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나 자신을 얽매게 되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건 자존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가령, 예정된 약속 시간을 훨씬 넘긴 상대를 10분 더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 말이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나의 정성은 바보가 되고 더 이상 상대방의 반응에 순진한 웃음을 흘릴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경우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뎌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렇다) 이건 내가 남들보다 못나게 예민해서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으나 무튼 그러하다. 자존심의 문제이다.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대는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문제. 내가 10분 일찍 나와 그대를 기다리는 것만큼 그대는 추위에 떨고 있을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서글픈 목소리보다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먼저 터져버린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오만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로 말하자면, 나는 오만한 사람이 못 된다. 난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멎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그만큼 내가 건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퇴화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나는 너무 멀쩡해지고 말았다. 나를 위협하는 이 환경에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심각할 정도로 멀쩡해지고 말았다. 쏜살같이 달려가던 방황의 그림자가 그립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방황은 사실 거짓말이 전부이다. 나는 방황을 하고 있지만 방황을 하고 있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퇴화를 시도 중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외로워진다. 그래도 나에게, 적어도 나에게, 이렇게나 편협한 나에게, 세상이 그저 과분한 나에게 이런 공간과 하찮은 말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낼 수 있는 이런 시간이 있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미약하지만 의식을 제한 무의식과 대화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다.

어제는 그 카페를 갔었다. 두 번째였다. 나를 울게 만들었던 그 곳을, 다시 갔었다. 그때 난 분위기에 벅차올랐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두 눈과 입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 또한 눈으로 화답을 하는 수밖에. 무튼 그런 곳을 갔었다. 구조는 바뀌어 있었지만 공간을 둥둥 울리는 음악을 한 품에 안고 있는 스피커와 어두침침한 공기는 그대로였다. 첫 눈에 좋아하고 말았던 노르스름한 조명도 여전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음악을 들었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함께 간 친구가 고른 LP음악을 들었다. 핑크 플로이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름 그리고 그들의 앨범의 표지를. 그리고 나에게 두 번째 추억을 선사한 그곳까지 말이다.

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1.
사실 누군가가 그립다는 것은 나 자신이 그립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은 나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나는 또 다른 너이고, 너는 또 다른 나가 아닌가.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고. 우리는 너와 나의 물아일체를 꿈꾸며 상대방을 그리워 한다.


2.
혼자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아팠던 마음이 치유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오늘처럼 살갗이 추운 날이면 더욱더.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 마셨다 내뱉는 순간의 쾌감, 자연에게서 느끼는 절대순수의 쾌락.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겨울이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그녀는 이전에 나로 하여금 인생이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러 번 믿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인생의 무의미함에 대해 깊게 탄식했을 때 니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그녀는 이것을 지나가면서 얘기했다.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니나는 그 당시 매우 불행했다.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고 내가 그녀를 가스 자살로부터 구해 주었을 때였다. 그녀는 분명 자기 인생을 내던졌다. 그러나 인생을 다시 얻은 그 순간 그녀는 또 한번 인생의 의미를 믿고 있었다. 아직 푸르죽죽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그녀는 말했다. 내가 의식을 잃기 시작한 때만큼 생을 미치도록 강력하게, 정말 지겨우면서도 멋지다고 느껴본 적이 전에는 없었어요. 이 이상 그녀다운 말이 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가.
  왜 나는 어두운 지하실에나 앉아 부드러운 종말을 소망하는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정말 살아보려 하지 않는가.







루이저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P.27



아무런 기대 없이 거리를 쏘다니다 들어간 가게에서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기쁨!
오오 기쁘다. 그런데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을 1년만 일찍 읽었다면 나는 그 동안 덜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에. 요즘은 삶에 대한 회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해 농도 짙은 회의를 느끼곤 했었다. 아아. 때때로 삶 저편에 있을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삶을 등한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많이, 사무치도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