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은 근 며칠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살아가다는 것은 곧 끊임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니, 제 아무리 미동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속에 숱한 사건들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음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일상을 그리고 나의 감정을 글로 옮기지 않은 근 며칠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차곡 차곡. 그리고 연속적으로, 때론 불연속적으로.
하지만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여전히 멍청한 상태이다. 어쩐지 나의 정신은 항상 0점에 머물러 있다. 플러스적인 감정도, 마이너스적인 감정도 없이 항상 0점에 머물러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었던 감정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의 외로움은 거기서 시작된다. 내가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무함.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거리는 기억들.
그런 말을 했었다. 난 무언가에 얽매이는 게 너무 싫다고. 얽매이는 게 싫다고. 내 말을 듣고 있던 누군가가 대답했다. 얽매인다는 건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경험이고, 그때만 유효한 감정이잖아. 나는 답하였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얽매이는 것이라고.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얽매게 되는 것이라고. 아니,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나 자신을 얽매게 되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건 자존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가령, 예정된 약속 시간을 훨씬 넘긴 상대를 10분 더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 말이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나의 정성은 바보가 되고 더 이상 상대방의 반응에 순진한 웃음을 흘릴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경우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뎌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렇다) 이건 내가 남들보다 못나게 예민해서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으나 무튼 그러하다. 자존심의 문제이다.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대는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자존심의 문제. 내가 10분 일찍 나와 그대를 기다리는 것만큼 그대는 추위에 떨고 있을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서글픈 목소리보다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가 먼저 터져버린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오만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로 말하자면, 나는 오만한 사람이 못 된다. 난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멎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그만큼 내가 건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퇴화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나는 너무 멀쩡해지고 말았다. 나를 위협하는 이 환경에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심각할 정도로 멀쩡해지고 말았다. 쏜살같이 달려가던 방황의 그림자가 그립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방황은 사실 거짓말이 전부이다. 나는 방황을 하고 있지만 방황을 하고 있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퇴화를 시도 중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외로워진다. 그래도 나에게, 적어도 나에게, 이렇게나 편협한 나에게, 세상이 그저 과분한 나에게 이런 공간과 하찮은 말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낼 수 있는 이런 시간이 있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미약하지만 의식을 제한 무의식과 대화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다.
어제는 그 카페를 갔었다. 두 번째였다. 나를 울게 만들었던 그 곳을, 다시 갔었다. 그때 난 분위기에 벅차올랐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두 눈과 입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 또한 눈으로 화답을 하는 수밖에. 무튼 그런 곳을 갔었다. 구조는 바뀌어 있었지만 공간을 둥둥 울리는 음악을 한 품에 안고 있는 스피커와 어두침침한 공기는 그대로였다. 첫 눈에 좋아하고 말았던 노르스름한 조명도 여전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음악을 들었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함께 간 친구가 고른 LP음악을 들었다. 핑크 플로이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름 그리고 그들의 앨범의 표지를. 그리고 나에게 두 번째 추억을 선사한 그곳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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