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4일 일요일

그녀는 이전에 나로 하여금 인생이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러 번 믿게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인생의 무의미함에 대해 깊게 탄식했을 때 니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그녀는 이것을 지나가면서 얘기했다.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니나는 그 당시 매우 불행했다.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고 내가 그녀를 가스 자살로부터 구해 주었을 때였다. 그녀는 분명 자기 인생을 내던졌다. 그러나 인생을 다시 얻은 그 순간 그녀는 또 한번 인생의 의미를 믿고 있었다. 아직 푸르죽죽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그녀는 말했다. 내가 의식을 잃기 시작한 때만큼 생을 미치도록 강력하게, 정말 지겨우면서도 멋지다고 느껴본 적이 전에는 없었어요. 이 이상 그녀다운 말이 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가.
  왜 나는 어두운 지하실에나 앉아 부드러운 종말을 소망하는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정말 살아보려 하지 않는가.







루이저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P.27



아무런 기대 없이 거리를 쏘다니다 들어간 가게에서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기쁨!
오오 기쁘다. 그런데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을 1년만 일찍 읽었다면 나는 그 동안 덜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에. 요즘은 삶에 대한 회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해 농도 짙은 회의를 느끼곤 했었다. 아아. 때때로 삶 저편에 있을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삶을 등한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많이, 사무치도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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