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2일 금요일

소설의 본질은 무엇일까. 작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방법의 일종일까, 아니면 대중을 위한 것일까. 만약 소설이 전자의 의미를 지닌다면 나만을 위한 글이 과연 타인에게 읽힐 때도 어느 정도의 효용이 생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기 때문에 서로를 동정하고 서로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철저히 나만을 위해서 쓴 글일지라도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녹아들 수 있을까. 

현재 나는 오직 내 안에서만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해 쓴 글이 과연 타인에게 읽힐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가 걱정이다. 우리는 소통불능에 빠질까 아니면 원활한 소통으로 인해 서로에게 교감을 하게 될까.

2014년 9월 3일 수요일

1. 나는 사춘기가 꽤 늦은 편이었다. 그리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게 생겼다. 학교에서나 길을 지나다닐 때 이성의 얼굴을 관찰하는 편이 아닌데 요즘은 그 얼굴 낱낱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사춘기의 아이들이 때로는 쾌활하고 때로는 에너지 넘치고 때로는 의기소침한 시기를 겪으면서 자아를 찾아가듯 나는 요즘 때로는 희망에 찼다가 때로는 의기소침해지는 시간들을 겪고 있다. 나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많이 궁금해진다. 더불어 나라는 사람이 얼마만큼의 매력이 있는지, 여자로서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많이 궁금하다. 전 남자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나 마음을 줄 정도로 깊은 관계를 형성했던 남자친구들이 없었던 터라 그럴 수도 없다. 이러니 실로 답답할 지경이다. 


2. 내일까지 정보처리기사 실기 신청기간이라 오늘 아침에 운동을 다녀와서 신청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필기합격자 명단에 없어서 신청이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받고, 나는 놀란 마음으로 산업인력공단에 연락을 했다. 아뿔싸. 실기 시험을 치기 위해선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필기 시험에 합격하면 그저 실기 시험에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래서 난 부리나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의 동네로 넘어갔다. 

이와 비슷한 일이 며칠 전에 또 있었다. 서류를 하나 내는데 전공 쓰는 란이 하나밖에 없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주전공인 영어영문학을 썼는데, 나의 친오빠 왈 복수 전공이면 복수 전공이라고 써야지 왜 단일 전공을 쓰냐. 듣고 보니 맞는 말이고, 생각해보니 내가 어설프게 실수를 한 것 같아서 고쳐보려고 했으나 이미 서류는 제출된 후라 수정이 불가했다.ㅠㅠ

또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다. 올해 쳤던 시험 중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이 있었는데 마냥 넋을 놓고 있다가 가산점을 받지 못했던 적도 있다.

오빠는 이런 날 보며 도대체 너에게 관심이 없어서 이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는데 실수였다. 왜 이리 정신을 놓고 다닐까나.. ㅠㅠ


3.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샀던 건 아마도 이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요즘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렇게 흥미로운 책이었나 싶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사랑에 대한 배움을 얻는다는 자세로 읽었지만, 오늘은 읽으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많이 성숙해져서일까. 똑같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느끼는 폭이 달라졌고, 마음 속에 전해지는 전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알랭 드 보통의 작가로서의 통찰력이 부럽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p.143 , "나"의 확인



4. 요즘 나는 매너리즘 상태에 빠졌다. 24시간 잠만 자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한동안 그만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하는 시기라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게으름인지, 아니면 이 공부가 나에게 전혀 흥미를 돋우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겠지. 


5. 오늘은 계획들 다 정리하고
쓰던 이야기 마저 마무리 짓자.




2014년 8월 29일 금요일

1.
아주 오랜만에 접속한다, 여기.
글을 쓰지 않았던 약 1년 동안 공부를 했었고 지금은 한 철의 공부가 끝나고 쉬는 중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아예 놓을 생각은 아니다. 남은 올해에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부딪혔다가 좋은 성과를 이루면 그 길로 곧장 걸어나가는 것이고, 아니면 내년에 다시 공부에 돌입할 생각이다. 




2.
내가 마지막 소설을 썼던 게 언제였던가..
사소한 기록과 같은 습작 말고 제대로 글을 썼던 것은 2011년에서 2012년 겨울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팔랑팔랑 잘도 돌아다녔었고, 2013년에는 공부만 했으니까. 2014년 여름, 이번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이 글을 쓰다가 이번 이야기의 제목이 떠올랐다. 내용은 거의 1/3을 썼는데 제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고생이었는데.. 떠오르는 제목들은 죄다 촌스럽거나 의미 없는 것들이라 탐탁치 않았었는데.. 으헤헤. 좋은 제목이 떠올랐다. 





3.
8월의 마지막 금요일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은 매년 한 번씩 돌아오지만 2014년 8월의 마지막 금요일은 오직 오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삶이 아주 많이 섭섭하고 애달픈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4.
요즘은 향수를 옷깃에 살짝씩 바르는 게 그렇게 좋다. 예전에는 1년에 몇 번, 좋은 날이 있을 때 기분내려고 꽃다발을 사듯이 가끔씩 선물로 들어오는 향수를 모으는 게 그렇게 좋았다. 인공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그저 향수를 사고, 선물 받고, 모은다는 데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다. 향수나 꽃 선물은 어쩐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황홀감을 주지 않나. 그랬는데 이제는 향수를 내 몸 어딘가에 발라서 체취로 남기는 일에 마음이 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일까. 





5.
내가 십대였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
뚱뚱하든, 날씬하든, 얼굴이 예쁘든, 못 생겼든, 개성이 있든, 아주 평범한 학생이든
십대의 아이들은 모두 예뻐보인다. 아주 예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 중 하나이다. 어른들은 십대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몇 년 전에 했던 학생 드라마에서 크게 회자되었던 시 한 구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에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학생들이 저마다 거리를 걸으며 하하 웃는 모습만 봐도, 그저 교복을 입고 화장기 하나 없는 그 풋풋한 얼굴로 돌아다니기만 해도 나는 그들이 예뻐 보인다. 그들을 통해 나의 시절을 회상하며 아름다움을 찾는다기보다는 그저 그 시절의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세상에 갓 태어나서 호기심이 요동치고 있을 것 같은 그 가슴 속 깊이가 참 부럽다. 누군가가 나에게 청춘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대번에 '호기심'과 '첫경험'이라는 키워드를 꺼낼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소용돌이'. 

어쩌면 그 시절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채워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어른들이란 십대 시절의 잠재력이 가능성으로 표출되는 시기이지 않나. 무언가 자신의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발산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그런 방식으로 세상 앞에 생존 신고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시기.

음. 그런데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갑과 을의 관계에 국한되어 자신의 세계를 좁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의 삶이 회사의 굴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회사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로 가치관과 자아관의 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모두가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 말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채워서 나라는 사람의 매력을 발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오래 오래 보아도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2013년 3월 2일 토요일

여행을 다녀왔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버린 1박 2일의 짧은 여행. 식후에 나온 디저트를 단숨어 집어삼켜버리 듯 다시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동네라고 느껴질 만큼 친숙한 전주. 이번이 벌써 네번째다. 지금까지 나는 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전주에 다녀왔다. 처음은 혼자,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기차여행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나에게 이번 여행은 과연 보통의 여행은 아니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그리고 마음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물론 나와 함께 여행을 간 친구가 이 여행을 임한 마음가짐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하였다. 사실 여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마음수련이라고 봐도 무방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나는 아주 많은 감정들 속에 뒤섞여 있었다. 내가 당면한 상황들, 그리고 나를 향한 내 안의 두려움들이 아주 뒤섞여있었다.
 
 
 
 
 
 
 
 
올해 1월과 2월. 나는 반복되는 트라우마로 인해 가족들과 심리적으로 멀어졌으며, 하려고 하는 일은 자꾸만 꼬이고 잦은 실패를 낳는 통에 극악의 좌절감을 맛보았고, 어떻게 일이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나와 유일하게 심리적인 교감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은 일이 생겨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 바람에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언제나 온전한 혼자가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나는 직업을 갖기로 마음 먹었다. 타인에게 구조 요청을 해가면서까지 나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나를 의지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심리적인 자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울음을 내색하지 않고 괜찮은 척 하는 일은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해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경제적인 자립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나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고자 마음 먹었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배신' 혹은 '패배'라는 단어를 붙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근래에 내가 겪고 있는 감정들을 찬찬히 풀어내서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 결심이 '배신'이나 '패배'라는 단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자괴감이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의 의지가 꺾여서 선택한 결심도 아니며, 타인의 권유에 설득당한 결과도 아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새로운 국면 속에 넣고 싶었다. 그동안, 이십대라는 언덕의 절반을 넘어온 지금. 나는 내 마음대로 나의 시간을 조절하며 살았다. 흐르고 싶으면 흘렀고 흐르고 싶지 않을 때는 물길을 막았다.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조금 더 치열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혹은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성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를 경계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있지만, 완전히 돌파하지 못한 것조차도 나의 성격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제야 나는 인정을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이게 나의 삶이고, 이게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삶을 인정함과 동시에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국면 속에 인생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지, 지금과 같은 세계가 유지될지, 내가 그 세계에 잘 맞는 사람일지 에 대한 고민들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면이자 위기이기 때문이다.
 
 
하하.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심리적인 위기 상황은 넘겨버렸다. 살아가면서 이제 더 이상 심리적으로 괴로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최하의 감정을 맛보고 나니 최상의 감정에도 행복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진심으로 웃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대 후반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영화 <베를린>을 봤다. 너무도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더니 왁자지껄한 환경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고 15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불빛을 손에 들고 버젓이 영화관을 들어오던 사람들. 영화가 상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하던 사람들. 여기 저기서 울려대던 전화벨, 그리고 번쩍거리는 카카오톡. 영화는 무조건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봐야만 잘 보이는 나에게 이런 환경은 거의 고역 수준이었다. 그래도 뭐.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북적이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새로운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잘 다듬어진 한국 액션 영화가 있었나 싶었다. 잘 다듬어졌으며 세련됐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액션과 몸과 몸이 부딪치는 순간을 리드미컬하게
잘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 영화의 정수이다.

앞서 영화를 봤던 친구가 대사가 많고 빨라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 영화를 보는데 내용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의 큰 틀이 북한, 한국,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들의 잇속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나라별 관계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이해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극의 분위기만 잘 따라가도 내용은 자연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베를린>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예쁜 화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연히 예쁘다기 보다는 예쁘게 담기 위해서 노력한 장면들이 많다. 첫 시작에 부감샷으로 평화로운 도시 베를린의 풍경을 담고 한쪽 귀퉁이에 한석규가 하정우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하정우와 류승범가 맑은 하늘과 햇살을 배경 삼아 대결을 벌였다. 이런 예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유난히 불쑥불쑥 놀랐지만, 실제로 영화의 감정선이나 진행에 방해 되는 요소는 전혀 없었기에 나쁘지 않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쁜 화면들의 연장선일수도 있는데 남성성이 강조되는 묵직한 이 영화에 간간이 여성스러운 면모들이 튀어나온다. 힘있고 강한 남성성을 부드러운 이음새로 이어 유하게 만들어준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꽤 귀여운 면들도 많다. 결말만 보아도 그러하다. 본래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대신 복수를 다짐한 듯 비행기 표를 끊는 하정우가 투 비 컨티뉴 자막을 대신할 때 나는 귀여워서 그만 풋 웃고 말았다. 속편을 기대해달라고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해둔 다부진 다짐 같아서 귀여웠다. 실은 자기 아들을 죽인 하정우에게 분노하는 명계남 님의 모습도 귀여움에 한 몫 하신 것 같다.

하정우, 류승범, 한석규, 전지현.
하정우의 연기는 늘 겉은 들끓어도 속은 침잠한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어떤 감정의 연기하든지 간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반해 류승범은 일정한 선이나 무게 없이 진짜 제 멋대로 연기를 하는데 매 순간 또 다른 류승범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어떤 씬에서도 그는 똑같지 않다. 같은 표정, 같은 목소리,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지만 막상 뜯어보면 어느 순간에서도 그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의 연기를 보고 예측불허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의 연기는 예측할 필요가 없는 연기이다. '지금'의 순간만 있기 때문에 예측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석규를 생각하면 트렌치 코트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잘 어울리셨다. 소위 테가 난다, 라는 말이 아니라 한석규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분위기가 이 영화 속의 역할이 입은 트렌치 코트와 잘 어울렸다. CIA에 있던 동료가 죽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억제하고 다시 솟아오르는 분노에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고 낮게 속삭이며 분노를 표출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한석규라는 배우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잘 단련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지현. 그녀는 틀림없이 매력적인 배우이다. <도둑들>에서 발칙하던 그 배우가 <베를린>에서는 순정적이며 청순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그녀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녀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것은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대사를 누가 쳐주느냐에 따라서 그녀의 연기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아직 그녀가 스스로 상대배우와의 관계에서 혹은 자신의 역할과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녀는 항상 당김을 당하는 쪽에 있어서일까. 흠.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나이가 들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익숙해지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물의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이 두렵다.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그 자리, 그 시간, 그때의 대화 그리고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와의 시간 속에는 내가 감지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만이 구사할 수 있으며 그 세계에서만 형용되는 언어와 생각의 틈바구니 속으로 나는 감히 들어갈 수 없다. 당신이 삼키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 당신이 감추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모조리 알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모른다는 공포심이 얼마나 나를 연약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신에게, 서로에게 더 솔직해져야 하나보다. 상대의 솔직한 모습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나의 솔직함으로 상대를 안도하도록 만들 수 있는데 사실 솔직해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기 때문에 솔직함에 대해선 어떤 의지도 쉽게 들지 않는다. 나의 탈을 벗고 나 자신을 대하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 무섭도록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무섭다.

2013년. 나는 내년에 어떤 사람으로 변화하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이며, 어떤 일들을 경험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고 또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주게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과연 누가 내 안의 당신이 될까.

만나고 싶어요.
나의 두려움을 나눠가질 누군가를 기다리며.
(2012년 마지막 일요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1. 꿈의 잔상
어제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올해 여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의도하지 않은 기억이기에 꿈 속에서 떠돌던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아버린 것 같았다. 한 팀으로 일을 했던 한 친구가 자신의 sns에 글을 남겼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자책이 많았던 사람인가...?' 그때 우리는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뜨끔하였다. 내가 워낙에 자책이 많은 사람이라서 어쩌면 나의 자책이 저 아이를 감염시켰을지도 모른다, 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내가 우리 팀의 조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아이를 너무나 책망한 나머지 그 아이는 성격에도 없던 자신을 자책하는 짓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공포스러웠다. 나의 콤플렉스가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타인의 몸 속으로 점점 번져가는 것을 보는 일이란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나의 꿈이 무엇인지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자책을 하고 말았다. 제기랄. 이틀 연달아 나는 외로운 아침을 맞고야 말았다.


2. 창문 프로젝트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명 창문 프로젝트. 프로젝트 명이 창문이 된 까닭은 단순하다. 이번에 만들기로 한 책의 표지에 창문 그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작업이니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자는 의미에서 특별히 창문 그림을 넣었다.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3. 방학
겨울 방학때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