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밥 좀 주오.
노동법률과 규제가 있지만 그것들이 소용 없어 지는 곳이 바로 영화판이라 하셨다. 작가 뿐만 아니라 스탭들에게도 영화를 찍는 시간은 가혹하다. 스탭 막내의 임금은 50여만원 정도, 24시간 풀 가동되는 노동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다.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요즘 워낙 영화판에 돈이 메마르다보니 만드는 사람도, 찍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바닥에서도 남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 부익부 빈익빈, 자본의 탐욕, 불합리한 합리화는 고결한 예술 앞에서도 죽는 법이 없으니까. 영화를 수단으로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자들은 온갖 핑계거리로 없는 돈마저 쓸어가고, 그 때문에 어제 밥을 굶었던 누군가는 내일마저도 굶게 된다.
누군가는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직업적 희생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자신이 선택한 삶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원래 배고픈 직업인 줄 알고 선택한거 아니야?, 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상관 없어.
인간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와 대우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사회에 그런 고귀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언젠가 추적 60분의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암투병에 관한 실정을 본 적이 있다. 삼성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기업이고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투자로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타당한 목적의 근거가 된다. 일단, 우선의 이익창출을 위해 공장을 돌린다. 설사 공정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검출되어도 상관없다. 돌리고 본다. 공장이 멈추는 것은 곧 자신들의 성장과 시장의 멈춤과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여 돌린다. 3교대, 6~8시간을 훌쩍 넘긴 노동시간에도 아랑곳 않고서 돌린다. 자신들은 그들에게 연장 근무의 월급을 주기 때문에 당연한 행위라 생각한다. 건강검진 결과에 납중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설비를 재정비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암으로 죽은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도 사람의 죽음보다는 회사로 날아 올 치명타를 두려워한다. (자신들의 행실이 그릇된다는 사실은 아는 모양)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아무리 기계가 공장을 장악했다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사람 없이 모든 생산이 완벽하게 이루어 지지 못한다. 공장은 사람을 위한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땀과 노동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노동자들)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진정한 사람의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만이라도 해줬다면 이런 방송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위로금을 가장한 억만금의 입막음용 돈이 아닌 인간적인 최소한의 대우였다. 아무리 고용주와 고용된 자의 관계가 돈으로 빚어진다 할지라도, 그 속에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만 있었더라도 이 사건은 지금과 달리 다소 누그러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인간 타령을 하는 것이 조금은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존재와 가치는 몰락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 인간을 운운하는 것은 신파적인 것이 아닌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꼭대기 층에 편하게 앉아 돈만 만지는 사람들조차도 돈 속에 잠식되어 자신이 사람인지 돈인지, 자신이 정녕 무엇인지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최고은작가의 가난했던 죽음과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결코 숭고하지 못하다. 그들의 죽음은 퇴폐되어가고 있는 현실의 아픈 증상이며 미래에 일어날 소리 없는 분란의 조짐이다. 사회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 나 자신조차도 편치 않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들의 죽음이 그들의 개인적인 삶이나 운명이기에 당연하다 여기거나, 늘상 일어나고 있는 직업적 현상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아마도 이런 시각들은 후에 지금 내가 느끼는 부정한 사회의 모습보다 더 비참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더 더럽혀져야 양반다리로 꼭대기에 앉아 내려다보기에만 익숙한 자들이 자신의 돈방석을 위해 압사되었던 인간적 고통들을 알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서 돈 더미에 묻힌채 자신 혼자 남았을 때, 그제서야 최소한의 인간적 의미를 배려하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려나.
우리는 우리가 인간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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