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많아진다.. 무엇이든지 많아지면 힘과 가치를 잃는 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긴다)
자꾸 친구가 넌지시 던졌던 그 말이 귓가를 왕왕 맴돈다.
저번에 떡볶이도 만들어 준다고 해놓고선
물 마시러 갔다가 냄비 한가득 담겨 있는, 어제 저녁에 만든 떡볶이를 보고 있으니 괜시리 그 아이가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떡볶이 보다도 그 말을 하면서 섭섭함에 샐쭉해졌던 그 아이의 인상이 떠오르는 건지도. 아니 어쩌면 그 아이의 그 말과 표정을 들으면서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속으로 엄청 미안함을 느꼈던 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지도.
2010년 8월 30일 월요일
제임스 낙웨이 James Natchwey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는 단지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열정'이다. 그곳이 세계 끝이든 바로 이웃이든 우리는 진심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 그러면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검색 도중에 발견한, 심은식 사진 작가의 포토강좌에서 발취한)
이번 여행 사진들을 보면서, 몇몇의 사진들에서 나는 넘어가지 못하고 망연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니 만큼, 여행길을 시작하면서 사진과 주제에 대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했었기에 첫 샷을 누르기까지가 엄청나게 무거웠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셔터를 누름에 익숙해지다보니, 주제는 증발한지 오래고 그냥 찍고 싶은 사물과 감정에 직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일단은 찍고 싶은 것들을 실컷 찍자, 다 찍고 나서 고민하자 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으니, 이거 참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진심이 부족한 사진들이 숱하니, 모든 사진들이 나에 대한 기만은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까지 번진다. 남들이 보지 않는, 가장 고귀한 진실이 숨어 있을 법한, 현장들을 포착하여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아무 감흥이 들지 않는다. 이건 착오이다. 허탈해져 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임스 낙웨이'의 금쪽 같은 조언을 보았다는 건 아주 드물게 오는 행운이 아닌가 싶다.
진심. 내가 찾는 그것이다. 아마도 내가 사진과 카메라를 놓지 못할 이유가 될 것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는 단지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열정'이다. 그곳이 세계 끝이든 바로 이웃이든 우리는 진심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 그러면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검색 도중에 발견한, 심은식 사진 작가의 포토강좌에서 발취한)
이번 여행 사진들을 보면서, 몇몇의 사진들에서 나는 넘어가지 못하고 망연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니 만큼, 여행길을 시작하면서 사진과 주제에 대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했었기에 첫 샷을 누르기까지가 엄청나게 무거웠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셔터를 누름에 익숙해지다보니, 주제는 증발한지 오래고 그냥 찍고 싶은 사물과 감정에 직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일단은 찍고 싶은 것들을 실컷 찍자, 다 찍고 나서 고민하자 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으니, 이거 참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진심이 부족한 사진들이 숱하니, 모든 사진들이 나에 대한 기만은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까지 번진다. 남들이 보지 않는, 가장 고귀한 진실이 숨어 있을 법한, 현장들을 포착하여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아무 감흥이 들지 않는다. 이건 착오이다. 허탈해져 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임스 낙웨이'의 금쪽 같은 조언을 보았다는 건 아주 드물게 오는 행운이 아닌가 싶다.
진심. 내가 찾는 그것이다. 아마도 내가 사진과 카메라를 놓지 못할 이유가 될 것이며.
가끔은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말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한 동안 말들을 아껴뒀더니, 머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공부를 안해서 손이 굳는다는 그런 굳음 말고, 너무 많은 말들이 머리의 빈 자리 구석 구석에 자리 앉아 버리니, 꽉 막혀버려 빈틈이 없기에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셈이다.
곧 개강인데, 그래도 나름 영문과라고 좋아하는 영미 쪽 작가라도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몇일 전에 어디선가 추천 받았던 수전 손탁에 대한 책들을 끌어 모았다. 지금은 '사진에 관하여' 를 보고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든다. 가끔 영화관을 나오거나, 다 읽은 책을 들고서도 뭔가 이상한 뒷통수의 기분에 머리를 갸우뚱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경우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주장을 보는 사람과 나누기 보다는 먹여 주는 쪽이어서 남은 약간의 불쾌함이었다. (주장 관철 시키기를 내가 싫어하는 까닭은, 자기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주장이란게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 하는데 가끔은 눈에 씌인 백태를 느낄 수는 있으나 대충은 앞이 보이니까 그냥 살아가는 식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주장하기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전 손탁은 아주 유연하게 여러 갈래의 길들을 설명해 준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 이면에 깊고 뚜렷한 통찰력이 있다. 이걸 다 읽고 나면 '해석에 반대한다' 도 읽을 참인데, 벌써부터 난 그녀의 팬이 되어버린 듯 싶다. 그녀의 존재를 알기 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3박 5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때론 여행이 설레임을 가져다 주지 않는 다는 야릇한 기분을 알고 와버렸다. 그래서 더 일상에 대한 적응은 빨랐는지도 모른다. 아니, 한편으로는 여행길에서 일상이 그립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의 잠잠함, 귀찮은 졸음의 질주, 뭐 그런 것들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갈망보다도 그 여행길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역시나 혼자 하는 일들은 편리하다는 점이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함께 하는 일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무엇이든 혼자 하고 해결하려는 이 끈질긴 근성은 귀찮음에 대한 동경이오, 어려움에 대한 회피였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데도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말을 하지 않는데도 서로의 기분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시간들. (헤어린다는 것은 겸손한 추측이지만,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라디오 헤드, 뮤즈(plug in baby 뮤직비디오가 인상깊었다), 트래비스, 마룬5, 카펜터스
노순택, 케빈 카터, 유진 스미스
김경주, 수전손택
타르코프스키(노스탤지아)
요즘 관심사
내가 조금 더 집요한 성격이라면 좋았을 텐데..
집착이 없어서 그런지, 대단한 저들에게 빛이 날 만큼 집요한 관심을 쏟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들의 노래와 사진과 텍스트와 영화에 미친듯이 열렬히 요동친다면 좋을텐데.
한 동안 말들을 아껴뒀더니, 머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공부를 안해서 손이 굳는다는 그런 굳음 말고, 너무 많은 말들이 머리의 빈 자리 구석 구석에 자리 앉아 버리니, 꽉 막혀버려 빈틈이 없기에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셈이다.
곧 개강인데, 그래도 나름 영문과라고 좋아하는 영미 쪽 작가라도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몇일 전에 어디선가 추천 받았던 수전 손탁에 대한 책들을 끌어 모았다. 지금은 '사진에 관하여' 를 보고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든다. 가끔 영화관을 나오거나, 다 읽은 책을 들고서도 뭔가 이상한 뒷통수의 기분에 머리를 갸우뚱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경우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주장을 보는 사람과 나누기 보다는 먹여 주는 쪽이어서 남은 약간의 불쾌함이었다. (주장 관철 시키기를 내가 싫어하는 까닭은, 자기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주장이란게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 하는데 가끔은 눈에 씌인 백태를 느낄 수는 있으나 대충은 앞이 보이니까 그냥 살아가는 식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주장하기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전 손탁은 아주 유연하게 여러 갈래의 길들을 설명해 준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 이면에 깊고 뚜렷한 통찰력이 있다. 이걸 다 읽고 나면 '해석에 반대한다' 도 읽을 참인데, 벌써부터 난 그녀의 팬이 되어버린 듯 싶다. 그녀의 존재를 알기 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3박 5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때론 여행이 설레임을 가져다 주지 않는 다는 야릇한 기분을 알고 와버렸다. 그래서 더 일상에 대한 적응은 빨랐는지도 모른다. 아니, 한편으로는 여행길에서 일상이 그립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의 잠잠함, 귀찮은 졸음의 질주, 뭐 그런 것들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갈망보다도 그 여행길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역시나 혼자 하는 일들은 편리하다는 점이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함께 하는 일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무엇이든 혼자 하고 해결하려는 이 끈질긴 근성은 귀찮음에 대한 동경이오, 어려움에 대한 회피였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데도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말을 하지 않는데도 서로의 기분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시간들. (헤어린다는 것은 겸손한 추측이지만,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라디오 헤드, 뮤즈(plug in baby 뮤직비디오가 인상깊었다), 트래비스, 마룬5, 카펜터스
노순택, 케빈 카터, 유진 스미스
김경주, 수전손택
타르코프스키(노스탤지아)
요즘 관심사
내가 조금 더 집요한 성격이라면 좋았을 텐데..
집착이 없어서 그런지, 대단한 저들에게 빛이 날 만큼 집요한 관심을 쏟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들의 노래와 사진과 텍스트와 영화에 미친듯이 열렬히 요동친다면 좋을텐데.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할 일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기분이야
내일은 수강신청에, 내일로 티켓도 주문해야하고(아직 어디서 끊을지도 정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촉박하다 ㅠ), 저녁엔 연극 보러가야하고.
곧 시작할 프로젝트 1,2 의 계획서도 만들어야 하고,
필름도 사야하고(필름을 사기 위해선 체크카드에 돈도 넣어둬야하고), 엄마한테 여행비 원조도 받아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시네마테크도 가야하는데. 흙흙
내가 어제 그런 말을 했었지.
그래도 요즘은 살만해요...
응 정말, 요즘은 살만해.
내가 막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는 핏덩이의 아기가 된 기분이야.
천천히 발 딛는 것부터 배워나갔으면 좋겠다는 희망, 딱 그 기분으로 살아, 요즘은.
내일은 수강신청에, 내일로 티켓도 주문해야하고(아직 어디서 끊을지도 정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촉박하다 ㅠ), 저녁엔 연극 보러가야하고.
곧 시작할 프로젝트 1,2 의 계획서도 만들어야 하고,
필름도 사야하고(필름을 사기 위해선 체크카드에 돈도 넣어둬야하고), 엄마한테 여행비 원조도 받아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시네마테크도 가야하는데. 흙흙
내가 어제 그런 말을 했었지.
그래도 요즘은 살만해요...
응 정말, 요즘은 살만해.
내가 막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는 핏덩이의 아기가 된 기분이야.
천천히 발 딛는 것부터 배워나갔으면 좋겠다는 희망, 딱 그 기분으로 살아, 요즘은.
2010년 8월 12일 목요일
비정성시 -김경주
기억이란 인간의 두번째 생이다 인간은 기억을 기다릴 뿐 기억을 소유할 수 없다 모든 기억은 불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 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하는 것이다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에 다름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내가 한 번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 때문이다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있다 따뜻한 말 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이 온통 비만 온 줄 알고 죽어간다
비 오는 날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에 던져진 태아는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하수구 속에서 죽어가는 곳이가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의 어미는 야산의 둔덕에서 하늘을 보며 빗물로 피 묻은 자궁을 씻고 있다 해가 뜨고 개미들이 어미와 태아의 끈이었던 태를 땅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비 온 뒤 축축한 땅에 귀를 대면 누가복음이 들려온다 개미의 저녁 예배를 듣다가 저녁을 굶었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서 참으로 아프게 죽을 것이다 흉노나 스키타인이거나 마자르이거나 돌궐이거나 위구르거나 몽골이거나 투르크족처럼 그들은 모두 유목의 가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많이 태어났고 새벽에 많이 죽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한 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생이별하는 것이다 저승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낯선 곳에서 자는 일이란 저승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생에 다름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란 내가 한 번 자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사진 밖의 나를 보면 어지럽다.
시차 때문이다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있다 따뜻한 말 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세상이 온통 비만 온 줄 알고 죽어간다
비 오는 날 태어나자마자 하수구에 던져진 태아는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하수구 속에서 죽어가는 곳이가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의 어미는 야산의 둔덕에서 하늘을 보며 빗물로 피 묻은 자궁을 씻고 있다 해가 뜨고 개미들이 어미와 태아의 끈이었던 태를 땅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비 온 뒤 축축한 땅에 귀를 대면 누가복음이 들려온다 개미의 저녁 예배를 듣다가 저녁을 굶었다
나는 유배되어 있다 기억으로부터 혹은 먼 미래로부터.
그러나 사람에게 유배되면 쉽게 병든다 그리고 참 아프게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여기서 참으로 아프게 죽을 것이다 흉노나 스키타인이거나 마자르이거나 돌궐이거나 위구르거나 몽골이거나 투르크족처럼 그들은 모두 유목의 가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많이 태어났고 새벽에 많이 죽었다
<11시> 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고장난 손목시계 속의 11시 55분, 두 남녀가 만난다. 여자는 위태롭게 지하철 난간에 서 있는데 놀란 남자가 달려와 여자를 제지한다. 술에 잔뜩 취한 여자는 남자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그의 앞에서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여자는 남자가 안고 있는 피켓에 관심을 가지곤 남자의 품에서 그것을 빼앗아, 신이나서 피켓의 말들을 읊어댄다. '건강한 산모를 죽인 병원을....' 갑작스럽게 발랄하게 글을 읽던 여자의 말들이 조롱처럼 느껴진다. 머쓱하고 미안해진 여자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피켓을 건내고, 그가 자신이 일전에 블로그에서 봤던 사연의 주인공임을 깨닫는다. 아내를 잃은 남자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여자 또한 4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별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말 자살이 하고 싶어서 지하철 난간에 서 있었던 것이라며 고백한다. 후에 그들은 살고자는 희망을 말들을 서로에게 던지지만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남자의 아내는 죽었지만 그 대신으로 아이는 살아있으며, 여자는 남자친구와의 아이를 낙태시키는 수술을 하면서 골반염에 걸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여자로써의 가치를 잃고 절망에 휩싸인 여자는 자신은 살 이유가 없기에 죽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남자는 살고 싶어 발버둥쳤지만 결국 죽은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어떤이는 죽고 싶어하지만 또 다른 어떤이는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죽어야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박민규의 단편소설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죽고 싶어서 목을 매려다가 저 멀리 건물 옥상의 산모가 방금 낳은 자신의 태아를 목졸라 죽이려는 모습을 보고는 그 여자에게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친다. 정작 자신은 죽으려고 천장에 줄을 매달아 놓은 상태이면서도 말이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나오기 위해 통과했던 질의 동그란 입구와 남자가 목을 매려고 묶어 놓았던 줄의 동그란 모양새는 닮았다. 그건 생명의 문과 죽음의 문턱의 닮은꼴을 뜻하는데, 그렇게 삶과 죽음은 닮은 것들이란 것이다. <11시>에서도 여자는 죽고 싶어 한다. 그녀의 죽음이 뜻하는 건 뭐였을까. 완전한 결말? 혹은 도피? 아니면 다른 희망으로의 전진? 나는 워낙 죽음에 관대한 사람인지라 박민규의 소설 조차도 나의 의도대로 왜곡하며 죽음에 대한 예찬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죽고 싶다는 여자에게 남자는 죽으면 편안은 하겠지만, 과연 행복할까요? 라 묻는데, 과연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이 행복을 염원하는 말일까 라는 의문을 한다. 죽고 싶다는 말은 현실과 현재에 대한 충동적 도피로써 행복을 염한다기 보다는 불행을 피하고픈 것이다. 사후의 세계는 알 수 없기에 그 세계의 정체는 일단 차후에 두고서라도 가끔은 현실을 피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분명. 단지 도망갈 수만 있다면.. 그런데 현실에서의 도망은 비현실적이야 란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위험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충동적이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충동적일지라도 순간의 선택이기 때문에, 나는 분명 그 순간에서도 진심으로 생각하고 했을 선택이기에, 적어도 나는.. 징그러울 정도로 주관적으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에.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의 죽음에는 관대하지만 타인의 죽음에는 관대하지 못한거 같다.
어쨋거나 삶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말을 했던 여자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다. 지하철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나를 떠올렸고, 언젠가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조금 죽어있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숨을 쉬는 가치판단에 대한 압박과 고통을 느끼는 나 자신이 떠올라서 나는 그녀가 슬펐다. 그리고 어렴풋한 유년의 기억이 밀려왔다. 어두운 옷장에 들어가 있었던 어릴 적의 기억이..
남자의 아내는 죽었지만 그 대신으로 아이는 살아있으며, 여자는 남자친구와의 아이를 낙태시키는 수술을 하면서 골반염에 걸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여자로써의 가치를 잃고 절망에 휩싸인 여자는 자신은 살 이유가 없기에 죽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남자는 살고 싶어 발버둥쳤지만 결국 죽은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어떤이는 죽고 싶어하지만 또 다른 어떤이는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죽어야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박민규의 단편소설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죽고 싶어서 목을 매려다가 저 멀리 건물 옥상의 산모가 방금 낳은 자신의 태아를 목졸라 죽이려는 모습을 보고는 그 여자에게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친다. 정작 자신은 죽으려고 천장에 줄을 매달아 놓은 상태이면서도 말이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나오기 위해 통과했던 질의 동그란 입구와 남자가 목을 매려고 묶어 놓았던 줄의 동그란 모양새는 닮았다. 그건 생명의 문과 죽음의 문턱의 닮은꼴을 뜻하는데, 그렇게 삶과 죽음은 닮은 것들이란 것이다. <11시>에서도 여자는 죽고 싶어 한다. 그녀의 죽음이 뜻하는 건 뭐였을까. 완전한 결말? 혹은 도피? 아니면 다른 희망으로의 전진? 나는 워낙 죽음에 관대한 사람인지라 박민규의 소설 조차도 나의 의도대로 왜곡하며 죽음에 대한 예찬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죽고 싶다는 여자에게 남자는 죽으면 편안은 하겠지만, 과연 행복할까요? 라 묻는데, 과연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이 행복을 염원하는 말일까 라는 의문을 한다. 죽고 싶다는 말은 현실과 현재에 대한 충동적 도피로써 행복을 염한다기 보다는 불행을 피하고픈 것이다. 사후의 세계는 알 수 없기에 그 세계의 정체는 일단 차후에 두고서라도 가끔은 현실을 피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분명. 단지 도망갈 수만 있다면.. 그런데 현실에서의 도망은 비현실적이야 란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위험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충동적이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충동적일지라도 순간의 선택이기 때문에, 나는 분명 그 순간에서도 진심으로 생각하고 했을 선택이기에, 적어도 나는.. 징그러울 정도로 주관적으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에.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의 죽음에는 관대하지만 타인의 죽음에는 관대하지 못한거 같다.
어쨋거나 삶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말을 했던 여자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다. 지하철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나를 떠올렸고, 언젠가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조금 죽어있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숨을 쉬는 가치판단에 대한 압박과 고통을 느끼는 나 자신이 떠올라서 나는 그녀가 슬펐다. 그리고 어렴풋한 유년의 기억이 밀려왔다. 어두운 옷장에 들어가 있었던 어릴 적의 기억이..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나의 시간은 덧씌워진다. 오히려 나는 기억의 힘으로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광장의 가장 큰 시계는 지구의 시간을 흘리고 있지만, 나는 그 시계 위로 나의 우주의 시계를 덧붙인다. 그건 나만의 철칙이자 철저한 작업이다. 그리고 나는 시계를 들여다 본다. 손목이 아닌 가슴으로. 나의 시간은 정확히 꼬집을 수도 없는 과거에서 천천히 천천히 거북이만큼 느림보의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나는 그 느림의 걸음을 바라보고 있고. 되새김질을 한다.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보다 한 템포 느리고 멍청할 정도로 우둔한 건 다 이 시계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그 멍청함이 좋고 신선하다고 본다. 나의 시계에는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그저 물 흐르듯 흐르는 시간의 강물만이 흐른다. 물가로 다가가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물을 작은 두 손에 담아 올려 맛을 보기도 하며 어쩌다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지나갔던 일들도 사람들도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행색으로 나를 반긴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느낌에 매료될때쯤, 아쉽게도 나는 현재 내가 서 있는 광장의 시계가 정각을 알리는 웅장한 비명소리를 들으며 깨어난다. 하는 수 없이 돌아간다. 손목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때론 이 두 세계가 분간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아직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어느 세계에 걸터 앉아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숨쉬는 대로 쓰고 있을 뿐. 그냥 쓰고 싶었다. 그냥. 별 뜻없이, 그냥.
2010년 8월 10일 화요일
2010년 8월 9일 월요일
무기력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팽배해진 허무주의 의식은 우리들의 의식을 갉아먹게 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배째라 식의 태도를 불러 일으킨다. 의식이 점점 바닥을 보이니 사회를 비판할 여력도 없고, 배째라 식의 태도는 극단적으로 죽음까지도 관대하게 만든다. 죽어도 좋고 안 죽으면 할 수 없지, 뭐 이런 태도? 우리를 집어삼킨 허무주의의 원천은 자신과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마지막 공연하기까지 틈틈히 지켜본 바로는 연극은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으면 연극은 불가능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해, 배려가 없다면 연극은 무대로 옮겨질 수 없다.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이 부족하고 인색한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한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의 거친 말들을 들으면서, 이렇게나 거칠고 고르지 못한 말들도 애정이 담기니 달콤하게 들리는구나, 비난이 아닌 비판이자 진심이구나 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없었다면, 연극인들이 연극을 만드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내 평생 저런 진심을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는 너무 삭막하고 허전하여 사람간의 인정도 메마르고 겉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속으로 울고 웃을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밖으로 안으로 무관심을 일관하며 인색해질 수 밖에 없었고. 물론 나 뿐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그러할 것 같다. 지극한 개인주의로 내가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에 바쁘지 남을 위한 진정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기엔 여간 힘든게 우리들의 시대가 아닌가.
사람이 사는 세상 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저 말의 뜻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알고는 있지만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 혹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진심이란게 옳다, 그르다 혹은 보편적인 평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와 상대의 비밀 안에서만 판단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 정말 통한 어떤 것이 있다면 두 가슴이 서로 찌릿거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 때의 그 진심을 잊지 못한다.
이상하게 터져나올 것만 같았던 울음과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하루들을 부여잡으며 눈으로는 탐색을 하고 머리로는 계산을 하고 가슴으로는 멍 때리고 있던 나를 뒤돌아 볼 수 있게 따가운 말들을 해주었던 순간. 나는 참으로 무거운 고마움을 안고서 밤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창 밖에 내려앉은 어두움과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공간들은 밝고 환한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그 빛에 둘러싸인 어둠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이 세상이. 이 세상에는 내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이 점차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슴 뜨거운 사람이랄게 별 게 아니더라. 누군가를 진정으로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슴 뜨거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마지막 공연하기까지 틈틈히 지켜본 바로는 연극은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으면 연극은 불가능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해, 배려가 없다면 연극은 무대로 옮겨질 수 없다.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이 부족하고 인색한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한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의 거친 말들을 들으면서, 이렇게나 거칠고 고르지 못한 말들도 애정이 담기니 달콤하게 들리는구나, 비난이 아닌 비판이자 진심이구나 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없었다면, 연극인들이 연극을 만드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내 평생 저런 진심을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는 너무 삭막하고 허전하여 사람간의 인정도 메마르고 겉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속으로 울고 웃을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밖으로 안으로 무관심을 일관하며 인색해질 수 밖에 없었고. 물론 나 뿐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그러할 것 같다. 지극한 개인주의로 내가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에 바쁘지 남을 위한 진정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기엔 여간 힘든게 우리들의 시대가 아닌가.
사람이 사는 세상 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저 말의 뜻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알고는 있지만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 혹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진심이란게 옳다, 그르다 혹은 보편적인 평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와 상대의 비밀 안에서만 판단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 정말 통한 어떤 것이 있다면 두 가슴이 서로 찌릿거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 때의 그 진심을 잊지 못한다.
이상하게 터져나올 것만 같았던 울음과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하루들을 부여잡으며 눈으로는 탐색을 하고 머리로는 계산을 하고 가슴으로는 멍 때리고 있던 나를 뒤돌아 볼 수 있게 따가운 말들을 해주었던 순간. 나는 참으로 무거운 고마움을 안고서 밤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창 밖에 내려앉은 어두움과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공간들은 밝고 환한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그 빛에 둘러싸인 어둠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이 세상이. 이 세상에는 내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이 점차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슴 뜨거운 사람이랄게 별 게 아니더라. 누군가를 진정으로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슴 뜨거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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