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9일 월요일

무기력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팽배해진 허무주의 의식은 우리들의 의식을 갉아먹게 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배째라 식의 태도를 불러 일으킨다. 의식이 점점 바닥을 보이니 사회를 비판할 여력도 없고, 배째라 식의 태도는 극단적으로 죽음까지도 관대하게 만든다. 죽어도 좋고 안 죽으면 할 수 없지, 뭐 이런 태도? 우리를 집어삼킨 허무주의의 원천은 자신과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마지막 공연하기까지 틈틈히 지켜본 바로는 연극은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으면 연극은 불가능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해, 배려가 없다면 연극은 무대로 옮겨질 수 없다.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이 부족하고 인색한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한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의 거친 말들을 들으면서, 이렇게나 거칠고 고르지 못한 말들도 애정이 담기니 달콤하게 들리는구나, 비난이 아닌 비판이자 진심이구나 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없었다면, 연극인들이 연극을 만드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내 평생 저런 진심을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는 너무 삭막하고 허전하여 사람간의 인정도 메마르고 겉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속으로 울고 웃을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밖으로 안으로 무관심을 일관하며 인색해질 수 밖에 없었고. 물론 나 뿐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그러할 것 같다. 지극한 개인주의로 내가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에 바쁘지 남을 위한 진정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기엔 여간 힘든게 우리들의 시대가 아닌가.

사람이 사는 세상 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저 말의 뜻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알고는 있지만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한 사람이 혹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진심이란게 옳다, 그르다 혹은 보편적인 평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와 상대의 비밀 안에서만 판단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 정말 통한 어떤 것이 있다면 두 가슴이 서로 찌릿거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 때의 그 진심을 잊지 못한다.
이상하게 터져나올 것만 같았던 울음과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하루들을 부여잡으며 눈으로는 탐색을 하고 머리로는 계산을 하고 가슴으로는 멍 때리고 있던 나를 뒤돌아 볼 수 있게 따가운 말들을 해주었던 순간. 나는 참으로 무거운 고마움을 안고서 밤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창 밖에 내려앉은 어두움과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공간들은 밝고 환한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그 빛에 둘러싸인 어둠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가는 것인줄로만 알았다, 이 세상이. 이 세상에는 내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이 점차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아가구나 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슴 뜨거운 사람이랄게 별 게 아니더라. 누군가를 진정으로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슴 뜨거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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