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그녀의 말과 그녀의 마음을 인용하여 말한다. 바닷가 근처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아저씨를 보며. 그래도 아저씨는 용기가 꽤 많은 사람이예요, 연을 날리고 있잖아요. 연은 멀리 멀리 솟아, 하늘 저 끝까지 달아나 있었다. 연을 이리 저리 감는 아저씨의 손은 느긋했고, 덩달아 연의 움직임도 느긋하고 느긋했다. 따뜻한 겨울의 바람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바다. 그리고 아저씨의 연. 그 둘의 조화를 보며 나는 얼마나 뜨겁게 울었었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이, 그리고 심하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았었다. 사실 아이라고 하기엔 큰 어른이었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그의 행동엔 세상에 때묻지 않은 천부적인 어떤 성질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의 커다랗고 두꺼운 어깨를 아이의 어깨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튼, 그 사람은 지하철을 처음 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웃음이었던 것 같다. 그를 제외한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은 웃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멈춘 웃음이 모두 그에게서 옮아간 양, 우리는 그가 방방 거리고 지하철 안을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마치 그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저렇게 미친 듯이 웃다가 언젠간 빵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고, 빵 터질지도 모른다고 떠올렸던 무의식의 생각이 나의 본심이고 현재의 내 모습이라는 예감이 들어 울쩍해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 바다를 보는 일은 간절했고 중요했다. 덕분에 떠난 그 곳에서 노란 유아복을 입고서 소풍을 나온 아이들을 만났고,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는 연을 보며 나는 덜 괴로울 수 있었고, 또 까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노곤한 잠이 쏟아진다. 잠과 시간은 함께 온다. 잠은 순수하지만 시간은 불순해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함께 몰고 온다. 불행하게도 불길하거나 찜찜한 기분 또한 시간과 함께 잠을 찾아 온다. 찜찜한 잠을 청했었던 어제의 밤과 그 언젠가의 밤들이 머릿 속을 둥실 한다. 나는 속이 헛헛해져옴을 느꼈고 또 비어있는 잠 속에서 두꺼운 하루라는 껍질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노곤한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손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다.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무기여 잘 있거라
헤밍웨이의 원작이자 1930년대에 영화화되어 만들어진 고전영화을 보았다. 물론 학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질색을 하기에 제목만 듣고서도 아주 달갑지 않았었다.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이거 이거 집중도 되지 않고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전쟁영화에 대한 나의 편견들만 나열하는 것에는 전쟁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들에 관한 많은 가치들이 빠져있고 내가 편협하기만 한 사람같이 느껴진다.
차라리 전쟁과 전쟁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발가벗기는 영화를 보았으면 나을 법 했다. 잔혹하겠지만 그런 영화가 오히려 더 나의 취향적이라고 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고전이고 그 명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나의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답답한 옷을 입고 눈을 본 듯해, 고전이라 말하는 것들이 모두의 고전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색은 밝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만드는 영화나 음악이나 글들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경우들과 늘상 침착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작품들은 밝고 유쾌한 아이러니함들을 종종 본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겉모습에 비해 어두운 나의 취향이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저런 단순한 말과 아이러니로 나의 모습을 간결해주니 조금은 안정이 된다. (늘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들쑥날쑥함이 나는 내심 부담스러웠다) 타블로의 소설집을 읽으면 한 귀퉁이에 타블로의 말이 적혀있다. 어릴 적의 나는 슬픈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다, 대충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보고서 무언가에 꽂힌 듯 수십번은 중얼거렸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무섭도록 슬프고 처참하고 잔혹한 인생의 숨겨진 그늘을 드러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라고.
헤밍웨이의 원작이자 1930년대에 영화화되어 만들어진 고전영화을 보았다. 물론 학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질색을 하기에 제목만 듣고서도 아주 달갑지 않았었다.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이거 이거 집중도 되지 않고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전쟁영화에 대한 나의 편견들만 나열하는 것에는 전쟁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들에 관한 많은 가치들이 빠져있고 내가 편협하기만 한 사람같이 느껴진다.
차라리 전쟁과 전쟁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발가벗기는 영화를 보았으면 나을 법 했다. 잔혹하겠지만 그런 영화가 오히려 더 나의 취향적이라고 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고전이고 그 명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나의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답답한 옷을 입고 눈을 본 듯해, 고전이라 말하는 것들이 모두의 고전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색은 밝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만드는 영화나 음악이나 글들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경우들과 늘상 침착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작품들은 밝고 유쾌한 아이러니함들을 종종 본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겉모습에 비해 어두운 나의 취향이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저런 단순한 말과 아이러니로 나의 모습을 간결해주니 조금은 안정이 된다. (늘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들쑥날쑥함이 나는 내심 부담스러웠다) 타블로의 소설집을 읽으면 한 귀퉁이에 타블로의 말이 적혀있다. 어릴 적의 나는 슬픈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다, 대충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보고서 무언가에 꽂힌 듯 수십번은 중얼거렸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무섭도록 슬프고 처참하고 잔혹한 인생의 숨겨진 그늘을 드러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라고.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오늘 친척 결혼식 때문에 창원까지 달리느라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을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서 들었던, 처음으로 들은 그의 노래 '도토리'. 몇 일 전 추운 죽음을 맞이 했었던 그는 홍대에서 꽤나 유명했던 1인 인디 밴드로써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인디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그의 존재를 그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그의 사연들이 고이 담긴 그의 가사를 음미하며 작은 죄책감에 휩싸였었다. 집으로 돌아와 과제를 하기 위해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와 88만원 세대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그(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또한 이 시대가 원하는 이 시대의 목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시대의 20대는 말을 잃었으며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비적 감성에만 치중하는 무기력함의 상징이라 생각했었고, 그런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스스로 루저라고 말하곤 했었다. 루저, 나는 그 단어를 단순히 나의 무기력함과 소극적인 모습을 방어하기 위한 단어로써 사용하곤 하였었는데 그가 노래하는 노래 속의 루저의식을 만나고 나니 가슴 언저리로 찬 물 한바가지가 쏟아진듯한 싸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 사회 속의 루저야 라고 말을 하면서도 루저가 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더욱 더 말을 하려 하였으며, 누군가에게로, 모두가 들어주진 않지만 자신과 누군가를 위한 가사를 노래하며 누군가에게 시선을 맞추려 노력하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노래에는.
세상과 그 속의 우리들을 위해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그의 정성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과감히 루저라 말을 하며 낮추는 그 태도 속에 감추어진 그의 고귀함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세상을 욕하고 싶어진다. 그가 그를 무능한 루저라 칭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에게 무능한 루저라는 명찰을 만들어 그의 가슴께로 달아 준 세상을 욕하고 싶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난처한 궁지로 몰아 넣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정말 제대로 된 문화라면 그 속에 시대의 정신이 들어있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고 즐겨 듣는 문화들에는 그런 요소들이 부족한거 같다. 그들이 신나하고 즐겨듣고 보는 것들은 잠시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트렌디적인 것들에 불과할 뿐, 세상을 향한 다부진 말들은 흔적조차 없다. 그것은 소비자들의 선택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소비자들이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이전의 시장상태에 대한 질책을 하고 싶다. 시장의 상인들은 여러가지의 문화들 중 돈이 되는 것들만 우선적으로 골라 시장에 내어놓는다. 고로 소비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것들은 시장판 위로, 선택을 받지 못한 '무능한 문화'라 지칭되는 것들은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기회도 없이 가라앉고 만다. 나는 그 불운한 과정 속에서 타락되어가는 문화의 가치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고, 세상이 그 힘을 다시 되찾았으면 좋겠다. (은연 중의 이 말 속에서 나는 다시 세상 속의 제 3자가 되는 듯하다. 내 손으로는 그 힘을 전혀 되찾을 생각을 않고 있는 나는..)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다시 자문하게 된다. 사회 속의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던가. 나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 시대의 20대는 말을 잃었으며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비적 감성에만 치중하는 무기력함의 상징이라 생각했었고, 그런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스스로 루저라고 말하곤 했었다. 루저, 나는 그 단어를 단순히 나의 무기력함과 소극적인 모습을 방어하기 위한 단어로써 사용하곤 하였었는데 그가 노래하는 노래 속의 루저의식을 만나고 나니 가슴 언저리로 찬 물 한바가지가 쏟아진듯한 싸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 사회 속의 루저야 라고 말을 하면서도 루저가 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더욱 더 말을 하려 하였으며, 누군가에게로, 모두가 들어주진 않지만 자신과 누군가를 위한 가사를 노래하며 누군가에게 시선을 맞추려 노력하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노래에는.
세상과 그 속의 우리들을 위해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그의 정성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과감히 루저라 말을 하며 낮추는 그 태도 속에 감추어진 그의 고귀함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세상을 욕하고 싶어진다. 그가 그를 무능한 루저라 칭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에게 무능한 루저라는 명찰을 만들어 그의 가슴께로 달아 준 세상을 욕하고 싶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난처한 궁지로 몰아 넣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정말 제대로 된 문화라면 그 속에 시대의 정신이 들어있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고 즐겨 듣는 문화들에는 그런 요소들이 부족한거 같다. 그들이 신나하고 즐겨듣고 보는 것들은 잠시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트렌디적인 것들에 불과할 뿐, 세상을 향한 다부진 말들은 흔적조차 없다. 그것은 소비자들의 선택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소비자들이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이전의 시장상태에 대한 질책을 하고 싶다. 시장의 상인들은 여러가지의 문화들 중 돈이 되는 것들만 우선적으로 골라 시장에 내어놓는다. 고로 소비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것들은 시장판 위로, 선택을 받지 못한 '무능한 문화'라 지칭되는 것들은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기회도 없이 가라앉고 만다. 나는 그 불운한 과정 속에서 타락되어가는 문화의 가치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고, 세상이 그 힘을 다시 되찾았으면 좋겠다. (은연 중의 이 말 속에서 나는 다시 세상 속의 제 3자가 되는 듯하다. 내 손으로는 그 힘을 전혀 되찾을 생각을 않고 있는 나는..)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다시 자문하게 된다. 사회 속의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던가. 나는 무엇이었던가.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두통이 생겼다. 머리 아픈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라 여길만큼 나는 두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처절하게 (두통을 겪고나니 정말 처절하게 고통스럽다는 걸 조금은 알꺼같다 ㅠㅠ) 머리가 아팠던 적이 없기에 정말 다행이다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잠깐 잠깐씩 아프던 머리가 하루 내도록 아프거나 다음날까지도 몽롱하기도 한다. 어제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잠들었었다. 음... 그렇네.. 막상 아프고 보니. 엄마가 두통이 굉장히 심한 편인데, 엄마는 나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 머리 아픈거까지 니가 닮아가면 정말 큰 일이라 하시며. 두통때문에 하루 종일 얼굴을 종이가 구겨진 것 처럼 잔뜩 구기고 있는 엄마의 표정이 머릿 속에서 정신 없이 휘감기고 있었다. 온통, 진저리나게. 나는 엄마의 그런 표정이 싫었었다. 엄마는 본인이 그런 표정을 지으셨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시겠지만. 근데 어제 정말 심하게 아파보니 엄마의 그 표정에 연민이 가면서 한편으론 많이 안타까웠다. (엄마의 두통이 운동부족과 고혈압 때문인 것으로 판명나긴 하였지만) 무튼, 나도 두통에서 빨리 헤어나야 할 텐데..
2010년 11월 7일 일요일
너무 신이 난다. 내일 제출해야하는 과제 두개를 끝냈다. 드! 디! 어! 학교 가기 약 9시간 30분을 앞두고서 끝을 냈다. 아니 어쩌면 그 끝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시간의 촉박함이 만들어 준 끝일 지도. 허허. 무튼 끝이 나서 난 너무 좋다. 일단은 고생을 하며 만든 나의 최선의 결과물이기에, 난 그것에 만족하련다. ^^
과제나 레포트 보다는 나는 개인적으로 '숙제'라는 단어가 참 좋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알림장을 꺼내던 아이들의 분주했던 손길과 선생님이 불러주던 목록들을 엉성하게 적었던 어릴 적이 떠오른다. 숙제 라는 단어 앞에서 마냥 난 어려지는 것 같다. 알림장에 적혀진 삐뚤 빼뚤한 글자들. 그 땐 어찌나 숙제를 안했던지, 다음날 학교에 도착해서야 알림장을 펼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것만 같다.
너무 오랜만에 A4 종이를 가득 메운 한글들을 보니 또 신이 난다.
과제나 레포트 보다는 나는 개인적으로 '숙제'라는 단어가 참 좋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알림장을 꺼내던 아이들의 분주했던 손길과 선생님이 불러주던 목록들을 엉성하게 적었던 어릴 적이 떠오른다. 숙제 라는 단어 앞에서 마냥 난 어려지는 것 같다. 알림장에 적혀진 삐뚤 빼뚤한 글자들. 그 땐 어찌나 숙제를 안했던지, 다음날 학교에 도착해서야 알림장을 펼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것만 같다.
너무 오랜만에 A4 종이를 가득 메운 한글들을 보니 또 신이 난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요즘 글을 너무 안 썼더니 엉망이 되어버렸다. 사소한 일기일지라도 자주 자주 썼을 때는 글을 쓴다는 그 행위가 손에 익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글에 속력이 붙었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손도 굳어버렸다.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 답답하고도 두렵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손가락을 움직이기 전에 뇌를 먼저 지긋이 누르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이 무서워진 것이다. 직관적으로 쓰기보다는 먼저 생각하고 계산하고서 글을 쓰려니 여간 힘이 들고 답답하다. 내 눈썹 위의 신경성 주름들은 더욱 짙어간다. 어딘가에 집중을 하거나 신경을 쓰면 가장 먼저 눈썹 위의 주름이 대답을 하고 그 다음은 긴장이 풀려 끝을 모르고 튀어나온 입이 시늉을 한다. '나 지금 엄청 신경쓰고 있어' 라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 하나에 나는 오늘 밤 무척이나 절망을 느낄 것 같다. 답답한 노릇이다. 다시 새로워지고 싶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좋을텐데. 역시 사람이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들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다보면 얻는 것이 있는 만큼 버리는 것도 많아지는 법인데, 버리는 것에 나의 의지가 투영되지 않았음은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글 쓰던 습관 하나를 잃고 슬퍼하는 오늘의 나처럼. 에라이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잘 되겠지. 다만 나는 매 순간마다 나를 잃지만 않으면 되겠지. 에라이 정말이지 모르겠다. 될대로 되겠지.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겨울이 다가오고 또 다시 한 살을 먹을 생각을 하니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이 산더미 같았다. 그리고 시험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숙제들에 초조해지고 또 갑갑해져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책 한권을 제자리에서 뚝딱 읽기가 힘이든다. 그만큼 요즘의 나의 시간들은 한뭉텅이로 있기보다는 조각, 조각 나뉘어져 있다.
몇일 전에 W 마지막회를 보면서 받았던 감동들이 아직 죽지 않고있다, 내 가슴 속에서. 그 때 내가 받았던 그 감동들에 최대한으로 빛을 집중시켜 그 힘을 원천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번번이 한다. W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독하고 많은 것들이 결핍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만 살아가고픈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의 희망을 담아오거나 전하는 직업을 갖고 싶고.
그리고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고 싶다.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처음으로 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또 영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던 나의 첫 감동은 다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였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건 여행자를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 속에는 나의 기억 속의 내가 있었고 또 결핍의 슬픔이, 아름다움이, 희망이 살아있었다.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에도 나는 희망을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희망을 말하던 희망이 없는 곳의 어린아이들의 연약해보이기만 하던 그 손이 희망을 말하고 있었기에, 나는 도저히 희망을 거부할 수가 없어졌다. 희망을 믿고 그 희망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 당당히 오해하고 왜곡할 자신이 생겼다.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 것이다. 희망을 거짓말하기 위해.
몇일 전에 W 마지막회를 보면서 받았던 감동들이 아직 죽지 않고있다, 내 가슴 속에서. 그 때 내가 받았던 그 감동들에 최대한으로 빛을 집중시켜 그 힘을 원천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번번이 한다. W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독하고 많은 것들이 결핍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처럼만 살아가고픈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의 희망을 담아오거나 전하는 직업을 갖고 싶고.
그리고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고 싶다.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처음으로 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또 영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던 나의 첫 감동은 다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였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건 여행자를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 속에는 나의 기억 속의 내가 있었고 또 결핍의 슬픔이, 아름다움이, 희망이 살아있었다.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에도 나는 희망을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희망을 말하던 희망이 없는 곳의 어린아이들의 연약해보이기만 하던 그 손이 희망을 말하고 있었기에, 나는 도저히 희망을 거부할 수가 없어졌다. 희망을 믿고 그 희망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 당당히 오해하고 왜곡할 자신이 생겼다. 언젠가는 꼭 영화를 만들 것이다. 희망을 거짓말하기 위해.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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