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어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연극을 보았다. 알렉산더 젤딘이라는 외국 연출가의 작품이었는데.. 현대적으로 잘 각색된 무대나 의상 디자인은 무척이나 돋보였고 전통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이 시대의 극으로 새롭게, 아주 훌륭히 재탄생시킨듯.

요즘 영상을 가미한 연극들이 종종 보인다. (내가 봤던 현대의 연극에선 대부분 그런 듯) 하지만 지금까지 봤던 연극들 중에서 어제 맥베스가 그 둘의 결합을 가장 효과적으로 잘 사용한 듯. 맥베스의 내면 심리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박제 부엉이의 눈을 클로즈업하고 피부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적외선카메라(심지어 어둠 속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본 사람의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무언가 적나라하고 인간답지 않아 보이는 기묘한 느낌을 준다)로 맥베스의 정면, 측면 등의 얼굴을 불안정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아마 그 영상이 없었더라면 어제의 연극은 이도 저도 아닌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올리기 위한 목적에 불과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 속에 맥베스의 내면이 있었기에 관객들은 그의 심리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설령 그 영상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흐름을 따라 극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영상과 연극의 궁합이 잘 맞는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큰 기쁨이다)

가장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던컨왕의 아들과 맥더프의 무리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온갖 야망과 죄책감에 타락한 맥베스를 처치하러 온 장면인데, 맥베스는 어지러워진 무대의 한 가운데에 앉아 촛불을 들고서 인생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라 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후회, 그리고 이젠 정말 끝에 서 있는,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삶과 허물어진 야망의 껍데기를 은근히 드러낸다. 그리고 던컨 왕의 아들과 맥더프의 무리들은 무대의 한 가운데에 허무하게 앉아 있는 맥베스의 주위를 원을 그리면서 계속 걸어다닌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그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 그들로부터 포위를 당하면서 고립된 맥베스의 비극과 최후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과 분위기를 저렇게 눈에 보이게,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구나 라는 감탄이 들 정도로.. 무튼, 어제의 연극에서나 희곡에서나 맥베스의 마지막 그 대사는 정말로 멋지다. 인생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라니... 멋지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 무대가 갖고 있던 현대적 의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같이 보러 간 친구는 무대가 너무 산만하다고 했지만. 독특하게도 조명이 비추는 곳만을 무대라 설정하고 극을 진행한듯. 그러니까 보통 지금까지 우리들이 보아왔던 연극들에서는 관객들의 눈 앞에 보이는 무대의 전반이 극을 진행하는 무대였고 그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무대의 뒷켠을 만들어 무대 위에서의 자신의 임무가 끝난 배우들은 다음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 퇴장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내가 배웠던 연극이론에선 그것이 연극의 기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연극에서는 그 틀이 무너져 있었다. 조명이 드러나지 않은 암흑의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그 움직임이 어색했지만 극 중에선 충분히 그 곳을 제 3의 연극 장소로 설정한 듯 했다) 다른 사람들의 연극을 보면서 서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존의 무대가 가진 무대와 무대 밖의 세계에 존재하는 엄격한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중반부에 쌩뚱맞게도 관객들에게 대화를 걸었던 배우의 연기 또한. 무대와 객석의 세계를 흩뜨리면서 관객들에게 혼란을 맛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설정인 듯. 물론 그 대화의 상대로 지목된 사람이 함께 갔던 친구라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흥미로웠지만 말이다. 배우로 무대에 등장한 사람이 배우가 아닌 것처럼 (마치 진행되고 있는 쇼 중간에 쉬는 시간에 흐름을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바람잡이 역할처럼) 관객에게 대화를 걸었지만, 정작 관객들은 그 대화에 쉽게 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만드는 건 무대를 향한 관객의 딱딱하고도 오만한 시선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오만에는 절대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객석에 앉아 배우들의 연기를 어떤 잔치의 쇼를 보기 위한, 연극 속의 관객의 입장으로서 자신들을 연극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여기기 보다는 배우들의 모습들을 단순히 보기 위한, 어찌보면 순수한 방관적 목도일 수도, 어찌보면 배우들의 연기를 팔짱끼고 바라보기에만 그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오만이다. (물론 이 오만이라는 단어는 연극 자체에서 무대가 갖는 오만일 확률이 크다, 내 생각에는) 그렇지만 그 오만이 부정적이든 단순한 단어이든 간에 어느 누구도 객석의 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연극이 발생된 이후로 근래까지 있어왔던 연극이라는 한 장르의 한계의 일부이기에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계가 있음과 흐트러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수동적인 관객들은 우스꽝스럽게 놀라면서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으니,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러가면 종종 느끼는 것인데 그의 작품에는 적어도 3시간의 러닝타임이 필요한 것 같다. 어제 맥베스는 1시간 40분 짜리였는데,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내용을 다 담은지라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보지 못하고 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많이 버거웠을 것 같다. 배우들과 극이 흘러가는 전개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허겁지겁이라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지점과 갈등의 중심점이 흐트러지면서 모호해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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