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연락이 뜸해진 나에게 자주 물어온다. 요즘 뭐하고 살아. 그냥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대답하면서도 머쓱해진다. 아, 나 너무 잉여스럽게 살아가는건가 싶은 생각에. 여유로운 생활을 지향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여유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다. 반드시 이뤄야하는 임무가 생겨서 그런가?
미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베티 스미스가 지은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이란 책을 읽으며 희망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일전의 나는 희망의 근원은 미래에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은 사치이며 허세에 불과하다고 여겼었다.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나에게 도리어 삶의 뒷편으로 한 걸음 퇴보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책 속의 주인공 프랜시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희망이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타고나는 인간 내재적인 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였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신이 붙여주는 일종의 부적같은. 차가운 바닷가에 널려있는 미끈하고도 딱딱한 자갈의 표면같은 껍질 속에 갇혀 있는 희망.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죽은 듯 잠자고 있는 희망을 흔들어 깨운 자들은 희망의 행복 안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아주 아주 슬프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는 하지만 절망과 외로움 속에서 아주 아주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인생의 목표 하나가 더 생겨버렸다. 헌신이라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선 상에서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들을 위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언제나 그들을 향한 나의 이런 마음을 잊지 않고서 살아가고 싶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 외에도, 자기 소개서와 학업 계획서를 쓰고 있었다. 나를 뒤돌아보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최선의 선택과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렸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보니 그 시간들을 어쩜 그렇게도 허무하고 초라하게 보낸건지, 한편으로 많은 후회를 했다. 나를 위하고, 나에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결정했던 선택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도피와 어렸던 마음이 뒤섞여 혼란 아닌 혼란 속에서 앞, 뒤 없이 충동적으로 결정했던 선택들도 있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시작점이 명확해졌다. 이제 다시는 나를 위한 모든 선택들과 임무들 앞에서 피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라는 말을 다시는 잊지 말아야지. 지금 이 시간과 선택들도 몇 년이 지나 다시 돌아본다면, 많이 미숙하고 어리석었던 결정이었다고 나의 부족함을 탓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언제나 선택은 어렵고 신중했다는 점을 귀하게 여긴다면 그 후회 또한 나의 인생 중의 하나였다고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지치고 자괴감이 넘치는 글을 쓰고 있노라면 나 또한 힘이 쭉 빠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런 과정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법이니. 2011년의 시작은 생각보다 꽤나 무겁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지.
블로그 보관함
-
▼
2011
(42)
-
▼
1월
(9)
- 나는 조금 멍청했다. 수강신청을 2주 앞둔 지금에서야 복수전공 공지를 발견한 나... 복수...
-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 혐오자'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집에 갇혀 살아가는 알세스트...
- 매주 일요일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기 전 즈음 방영되는 영화 프로그램에서 우연치않게 '아이...
- 어제 오후 3시에 텝스시험 치러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중학교에 갔었다. 내가 다녔던 학...
- 어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연극을 보았다. 알렉산더 젤딘이라는 외국 연출...
-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말을 납득하기까지 힘이 들었...
- 친구들은 연락이 뜸해진 나에게 자주 물어온다. 요즘 뭐하고 살아. 그냥 공부도 하고, 책도...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표시해 두었었다...
- 새로운 시간의 장막이 오른다. 어제 밤에 엄마와 단촐하게 (과일 음료와 다름 없는, 아직 ...
-
▼
1월
(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