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의 희곡 '인간 혐오자'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집에 갇혀 살아가는 알세스트.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궁정, 사교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숨기고 타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위선적으로 말하고 속물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불순하다 여기며 진실의 숭고함을 끈임없이 주장한다. 그는 그런 자신의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며, 세태와는 달리 진실이라는 세상의 근본적 고결함을 순고하게 지키기 위해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다. 사회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일 수 없었던 그의 올곧은 고결함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필랭트는 너무 꼿꼿한 그의 태도를 나무라며 누그러뜨릴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그런 그의 조언조차도 위선이라 여기며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하는 여자에게까지, 사랑이라는 매혹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홀려있는 와중에도 그는 진실의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무수히 노력한다. 결국 그녀가 그에게서 손을 놓아버리지만.)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며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에는 틀림없는 진실이 담겨있지만, 친밀한 관계 속에서조차 한치의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분명, 그에게나 우리들에게 진실이 중요하고 또 고귀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혐오자' 속의 인간 혐오자인 알세스트처럼 무조건 드러내는 것만이 진실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숨기는 것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숨겨야만 해결이 보이고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옳은 길이 되기도 한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과 진실을 숨기는 은밀한 통로.
근래에 상류계층에 환멸을 느끼고 인간으로써의 진정한 삶을 찾아 떠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로 접하다보니 그들의 위선적인 삶과 진실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인간 혐오자'를 보다보면 그들의 위선과 진실이 충돌하는 선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강직하고 언제나 올곧은 알세스트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조금은 의아한, 스무살의 나이에 이혼을 하고 모든 남자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여자. 그녀와 알세스트를 흠모하는 또 다른 여자의 대화를 보면, 그들은 다른 곳에서 들은 서로에 대한 헌담을 폭로하며 지금까지 자신들을 포장해주었던 극 속에서의 아름다운 수식어들을 더럽힌다. 하나는 아름답고 친절하며 모든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어여쁜 여자였고, 다른 하나는 아름답지도 않고 여성적인 매력은 없지만 여자 알세스트라고 불리어도 어색함이 없는, 보통의 여자들의 매력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위선으로 포장된 그 둘의 껍데기는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이 꼬집은 헌담, 그러니까 어찌보면 사람들이 직접 말해 주지 않았던, 그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면서 위선이 가진 양면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포장된 것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지만, 잘 포장된 포장지가 어쩌다가 벗겨지게 되는 순간은 진실이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몰고 온다. 인간적인 환멸과 혐오는 그 속에서 배로 증폭된다. 그 전제에는 진실을 숨기는, 평온한 상태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인간들이란게 원래 위선이 어정쩡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우스꽝스러운 자태를 더 즐겨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모든 혐오는 알세스트가 느꼈던 것처럼 진실과 거짓에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악한 본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만을 보고서 탈사회를 감행한 알세스트는 너무나 고결해 우둔했다고 볼 수 있다. 선한 본성을 치료삼아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연민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이진 못하더라도 바라보면서 살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타협은 위험하면서도 중요한 선택인 것 같다.
무튼 무척이나 재밌다. 이 희곡. 어설프게 웃기도 하면서 단숨이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상상되어서 더 재밌었다. 아.. 이 말이 제일 멋지고 숨가쁜거 같다. '재밌다' 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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