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기 전 즈음 방영되는 영화 프로그램에서 우연치않게 '아이엠러브' 라는 이탈리아 영화 예고편을 보았었다. 작년인가 제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다는데(아마도 작년?) 너무 궁금해서 오늘 보러 갔었다. 개인적으로 조조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 벌써 조조시간대 잘려먹혔다. 하루에 단 3번 상영, 오후에 하나, 저녁부터 밤까지 두개. 불과 5일 전에 개봉한 영화 시간대를 벌써 잘라먹다니. 아직 지방의 예술영화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그나마 여긴 센텀 롯데시네마에서 만든 아트관이라도 있어서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개봉과 동시에 예술 영화를 본다는 거 꿈도 꿀 수 없다. 인터넷 개봉 날짜는 떠 있는데, 서울에서는 상영하는 곳도 많은데, 정작 나는 볼 수 없을 때 얼마나 짜증나는지 모른다! 특수 영화관(시네마테크, 국도예술관)에서 특 별 상 영 을 해주거나 그 곳에 DVD가 입수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자칭 영화 도시라고 말하는 부산이 이 정도인데 다른 지방은 아주 그럴 기회 조차 없는거 아닌가 걱정이 된다. 많은,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는데 그럴만한 기본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튼, 잡소리 다 넣어두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기본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갔기에 꽤나 흥미롭게 봤다. 보는 중간에 실잠같은 졸음이 잠깐 들었던 것 빼면.(근데 생각해보면 웃긴게 엠마와 안토니오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 한마디로 야한 장면에서 난 졸았다ㅋㅋ 사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 동안 영화들이 섹스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했었다. 아마도 그것들은 진심의 사랑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존의 것들보다 더 야하게 찍을 것을 목적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어이없게도 울뻔했다. 너무 너무 너무 울컥하는 그 감동이 단숨에 몰려왔기 때문에.
'아이엠러브'를 소개하는 리포터는 이 영화이 채털리부인의 연인을 닮아있다고 했다. 주인공 엠마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로 시집을 와 이탈리아 사람처럼 지낸다. 건실하게 아이들 셋을 길렀고 이탈리아의 대단한 가문의 며느리로써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삶에 지쳐가게 되고 그 즈음 아들, 에도의 친구이자 요리사인 안토니오를 만나게 된다. 처음 그를 주방에서 만났을 때, 그는 우연스럽게도 러시아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엠마는 거기서 자신이 그리워했던 고향의 향수를 만나게 된다. 다음 날 안토니오의 식당을 찾아가고 거기서 안토니오가 만들어 준 새우요리를 먹으며 안토니오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 정말 일품이다. 붉은 새우의 몸과 붉은 그녀의 입술 그리고 그 장면 안에서 묘하게 푸르스름하던 그녀의 눈동자. 접시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부터 가게 안의 소음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상기된 그녀와 접시만 살아난다. 처음으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행복한, 물론 비명은 지르지 않는다, 표정을 짓게 되며 그 표정은 마치 지상에서 잠깐 숨을 멎었던 물고기가 물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생기있고 유연하게 미끄러지는, 그 때 그 움직임과 닮았다.) 그러고나서 몇 달이 흐른 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그런 딸에게 현재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며, 딸이 쓴 쪽지를 통해 그 사람을 향한 딸의 진실된 사랑을 보게 된다. 그리고 엠마는 산로메로 떠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안토니오와 재회하게 되고, 산 속 깊숙이 숨어있는 그의 농장에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온갖 자연이 뿜어대는 소리와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 있는 그대로인 자연 안에서 어떤 현실의 무게나 그 동안 그녀를 짓눌러왔던 형식, 격식 따위 던져버리고 엠마는 사랑을 하고 그 속에서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그들의 사랑의 배경이 되는 자연의 모습과 그 속에서 관계를 맺는 그들의 모습은 다분히 원초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그녀의 사랑은 원초적인 사랑이라는 본래의 뉘앙스보다는 한단계 상승되어 있다. 원초적이기는 하지만 감히 원초적이라 말할 수 없는, 어쩌면 엠마의 껍데기에서만 맴돌던 사랑을 탈피했기 때문에 더 성숙하고 인간 근본적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안토니오가 우하 스프를 만들어 엠마의 가족 식탁에 올리게 되면서 균열의 조짐을 엿보인다. 우하 스프는 엠마와 아들인 에도의 둘 사이를 애정어리게 이어주던 매개체였다. 다른 가족들은 그 스프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하 스프는 단순한 스프가 아닌 이탈리아 한 가운데에서 외롭게 자신의 존재를 외치던, 러시아인인 엠마의 향수이며 본질이다. 그 영화 속에서,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우하 스프를 만든다는 것은 엠마의 본질과 영혼과 통한다는 뜻이며. 더불어 안토니오가 엠마에게 바치고 싶었던 사랑인 셈이다. 그것을 눈치챈 아들 에도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사고로 죽게 된다. (돌에 머리를 부딪친 아들의 사고 장면과 병원에서 그의 죽음을 고하는 의사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을 담는 카메라는 너무 담담하게 절제되어 있다.) 아들이 죽은 사고에 연루된 엠마는 그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엠마가 그로 인한 죄책감에 다시는 안토니오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들이 자신의 사랑 때문에 죽게되었으며, 자신과 안토니오 사이의 비밀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되어버렸으니 영원히 그녀의 영혼은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들의 장례가 치뤄지고 죄책감에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은 안토니오를 사랑한다고 고하게 되고 급히 짐을 싸서 집을 뛰쳐나온다. (그녀가 안토니오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녀가 쥐고 있었던 남편에 대한 사랑은 뿌리 뽑히게 된다. 그는 매몰차게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너의 존재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한 마디로 그녀의 가정 속에서 그녀는 엄마이자 아내라는 역할극에 불과했다는 뜻.) 그녀는 짐을 싸고서 아주 편한, 지금까지 볼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복장을 하고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웃은 사람들 꽤 많다. 내 생각에는 그 복장이어야만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상류층의 우아함을 단숨에 벗어버린 터라 누군가에게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웠을 것 같다.) 떠나는 문 앞에서 그녀의 눈은 딸을 향하고 딸은 그런 엄마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리고 딸의 애인(여자친구)이 그런 둘 사이의 교감을 눈치채고서 떨리는 눈동자로 딸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집안의 분위기는 술렁인다, 그리고 돌아보면 엠마가 떠난 문은 휑하게 흔들리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함께 봤던 누군가의 입을 빌리자면 이게 끝이야? 할때 정말이지 끝이 난다. 엠마와 안토니오로 추정되는 두 남녀가 누더기 차림으로 엉켜있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결국 엠마는 안토니오에게 다시 돌아간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의 상처를 건너 안토니오라는 사랑을 향해 다리를 건넌 셈이 되는데, 왜 하필이면 엠마는 그에게로 돌아가나, 고민이 들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왜 굳이 감독은 그런 방향으로 의도한 걸까. 아마도 그건 엠마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 속에서 다시 죽은 듯 살아가기에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도 뿌리칠 수 없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생명력이 무르익어있는 순간을 맛보았기에 다시 고통을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에게 안토니오는 일종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해방과 생명을 위한 탈출구가 아닌 죽음을 위한 탈출구,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든 안토니오와 자신과의 관계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벌을 받기 위해 안토니오와의 사랑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엠마는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속의 안나와도 닮은 구석이 꽤나 많은 여자이다. 안나는 이성으로 짝지어진 자신의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남편와 아이를 모두 버리고서 열정적인 사랑을 찾아간다. 안나의 결말은 엠마의 행복한 마지막과 아주 다르지만, 사랑을 선택하게 된 배경과 사랑 앞에서 느낀 두 사람의 기쁨, 환희, 행복함의 감정은 아주 닮아 있다.
아마 이 영화를 본다면 결코 스토리 속에서 불륜이나 신파같은 어리석은 말들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다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것 같은데도 장면들은 비밀스럽고 절제되어 있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지만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일정한 순서와 스토리들을 밟아감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적절하게 숨길 때와 적절하게 드러낼 때를 알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위한 영화가 아닌 영화를 위한,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같다. 무엇보다도 설명하려 들지 않고 화면 구성과 소리를 통해서만 분위기를 보여주려고 한 노력이 멋지다. 내 안에 새로운 영화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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