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말을 납득하기까지 힘이 들었다. 저 말은 세상에 대한 이치와 도덕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곧, 나는 비도덕적이며 불순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가슴이나 경험 혹은 무의식적인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방문을 닫고 지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생각이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나를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귀에 부질없는 말을 잘 내뱉곤 한다는 사실을. 사실 나는 조금 억울하다.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은 내가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태어난 것인데 말이다. 그들의 머릿 속에 들어간 나의 말은 언제나 하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어떤 시험의 답을 매기는 것처럼 정답이냐 아니냐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말은 그들에게 언제나 오답이다.

조금 답답한게 무엇이냐면. 나에게 오답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더라도 소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발생되는 어떤 불순한 원리이다. 그리고 그런 원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과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이런 세상의 오답을 너무 정확하게 찝어내기 때문에 나의 말들은 오답이라 생각하고 무조건적으로 반박한다. 한편으로 그들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사회에 나가지 않은, 적어도 사회생활을 몇 년에서 몇 십년까지 해 온 그들보다 사회와 사회의 때를 잘 모르는 애송이이기 때문에 세상의 그릇됨을 더 적나라하게 발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나를 위해 일찌감치 나의 의식을 고쳐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사회에서 나이가 들고 머리가 더 무거워지면 변할까. 오답을 오답이라 말하지 않고서,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그저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될까. 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답을 오답이라 말하지 않는 건 정말 나쁜 짓인데 말이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던 배경에는,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지 않아도 혹은 내가 누군가를 염려하지 않아도 나는 나 혼자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이 깃들여 있었다. 물론 생각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 방문을 닫고서 빛도 없고 창문도 없고 누군가와 소통할 구석도 없는 그런 골방에서 오래토록 지낼 수는 없다. 또한 처음보는 사람의 사고나 고통의 현장을 아무렇지 않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와 연관되어 있지 않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상황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그 사람을 연민하기도 한다. 그것이 나와 모든 사람들 사이에 연결된 아주 가느다란 고리이다. 그 고리의 감정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는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거나 누군가를 가혹하게 만드는 세상의 오답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가 먹어 지금의 우리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면 나는 변할지 모른다. 지금보다 욕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괴팍한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매일같이 신경질을 부릴지도 모른다. 그렇더 하더라도 세상을 그늘을 돌아보고 오답을 오답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입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 끗만 잘 못 태어났어도 나는 지금 현재 있는 이 곳이 아닌 세상의 그늘진 지옥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세상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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