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표시해 두었었다. 노트에 손으로 직접 적으려다가 방대한 양에 할 수 없이 오늘 아침에 워드로 옮겼다. 작년에 그의 또 다른 책인 농담을 읽으면서 흥미로웠지만 얼마 읽지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한 기억이 난다. 일단 읽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었다. 휴식을 취하고 싶어 들었던 책에서 도리어 정신적 피로를 느꼈으니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도 나는 틈틈히 쉬어야 했고, 도저히 두뇌회전이 이루어 지지 않는 날에는 덮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문체나 책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그의 문장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상으로 해독하여 읽고자 했던 나의 욕구이자 욕심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그의 문장 속에서 나는 수면 아래로 숨어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를 표출하기보다는 나의 내밀성을 타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지켜야한다는 강박 속에서 어느 하나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었던 나의 속 알맹이를 그가 발라주었다고 해도 그건 과언이 아니다.
이분법을 이렇게나 멋지게 흐트러 놓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인생의 시계를 가벼움이라 칭하고, 또 그것을 무거움이라 말할 수 있는 그의 언변과 걷잡을 수 없이 넓어 고독이 절로 흘러나오는 그의 사상에 부러움을 느꼈다. 인생과 사랑과 역사. 모두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번의 선택만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볍기 때문에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무거움이 남는다. (책을 읽은지가 몇 일이나 지나서, 책의 완전한 내용이나 그가 말하고자 했던 말들이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속에서 그와 내가 교감했던 인상정도만이 남아있을 뿐.)
사실 이분법이 나에게 가져다 준 강박은 실로 대단했다. 검은 것은 두렵고, 무섭고, 추악한 것이며 흰 것은 아름답고, 순결하고, 순수하다. 거짓말은 언제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불신적이며, 비도덕적이다 하지만 진실은 흰색이 보여주는 상징만큼이나 고결하고, 숭고하며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위배들을 청결하게 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당연하게 자리잡은 편견같은 이분법을 나는 증오했었다. 거짓말이 추악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거짓말은 진실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검은 것은 악마이며 흰 것을 천사라고 말하는 자들의 입에 그들의 눈에 비친 검은색의 추악함보다 더 검고 끈적한 액체를 뿌려주고 싶었다. 나의 귀에 들린 그들의 입에는 그들만의 이분법이 우월적인 편견으로 내려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는, 그들의 고집을 기어이 엎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만한 요량이 없었다. 아니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들의 비위를 마춰주기 위해 그렇다고 대답을 해 왔던 내 안의 나를 밀란 쿤데라의 유연성을 통해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정신적인 자유 속에서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헤엄치고 있는 그의 움직임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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