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어제 W 마지막 회를 보고서 자고 있는 엄마 옆에 기우뚱하게 누워 닭똥같은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흑흑흑.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금도 무사히 생활하고 있을 지 알 수 없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라고 물었던 무모했던 물음과
수줍은 듯 웃으며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과 희망의 메세지에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라는 질문에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데 조금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대답을 했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절반도 체감하지 못한채, 무의식적으로 흘렸었던 말.

저번 인문학 수업시간의 주제는 세상의 진실이었고,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진실의 의미와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은 언젠간 폭력적인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라 말씀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진실을 더욱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라 하셨다. 진실은 파괴적이기에 선천적으로 인간들은 그것을 외면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씀과 함께.

어떤 사람이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희생을 하면서까지 진실을 알아야 합니까? 굳이 진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데요, 그리고 진실을 깨우치기 위해선 분명 누군가와 우리들의 희생이 필요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알아야 하는 겁니까?

그건 마치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경계에 중첩된 질문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분명 나의 행복과 만족만 충족되면 괜찮은 곳이 될 수 있다. 나의 행복과 만족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에. 하지만 나의 행복과 만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들'과 '우리'들의 삶을 함께 할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간혹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내 인생의 전부를 바쳐야 하는 의미의 진실이라면 더더욱.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분명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요즘처럼 많은 것들이 풍족하고, 또 그 풍족 속에서 결핍을 모르고 자라난 우리들의 세대라면 더욱이. 자유가 없는 세상이라는 말보다 돈이 한 푼 더 있는 삶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대들이니까, 그런 정신을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등 뒤에 숨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세상의 진실이 바로 그것이니까.

하지만 어제 W를 보면서 나의 이기심이 나의 진실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지막회의 방송이라 더욱 더 그랬을테고. 단지 숨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동안의 진심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에 자신들의 나라를 찾길 원하는 팔레스타인의 자유 운동가와 33명의 광부들을 위해 직접 현장을 찾아왔던 칠레의 대통령의 따뜻함과 그들을 도와주었던 여러 사람들 그리고 세상 끝의 희망들이 폭탄과 날아오는 돌멩이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전쟁 속에서 희망을 염원하며 웃던 아이들의 얼굴들, 그 속의 진심들이 내 안에도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패닉이 된 나는
그 질문의 속 뜻이 일종의 희생이 아니냐고 되물었었다.
사실 그건 희생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행방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세상의 단면이 아닌 이면을 찾아가는 길과 의미가 모조리 그 질문 속에 숨어있음을 나는 어제서야 깨닳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제부턴 책임감과 용기의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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