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시>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생시절 문학의 한 부분으로써의 시를 배울때 우리는 시의 첫행에서 시작해 마지막행까지 생선 뼈를 바르듯 낱낱히 해체시킴과 조합을 반복해 시를 배우곤 했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시험을 치기위한 분석자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봤었다. 단어를 칼같이 해석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준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던, 그런 불운한 시를 배워왔던 우리들에게 그런 의미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에 한번쯤은 봐야하는 영화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를 보는 내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세지들을 조합하려고 했지만 그리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플롯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메세지보다 영화 전체가 한 편의 시 그 자체로써 부각되는 의미가 더 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 보고서 영화관을 나설때면 시 한편 제대로 봤구나 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두뇌를 회전하며 봐야하는 작품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작품들도 있다. 그건 음악이든, 연극이든, 문학작품이든, 영화든 상관없이 모든 예술작품에서 공통되는 점일 것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삶에서 예술을 갈망하는 이유이다. 진심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은 여러 감정을 느끼고 그럼으로써 다시 한번 살아있고 살아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면서 삶의 부족함에 대한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래야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숨 한번 틔우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 <시> 속의 주인공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할머니이다. 그녀가 시를 배우면서 얻게 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지만, 그녀의 현실은 성폭력 가해자가 된 외손주의 뒤치닥거리로 추하기 짝이 없다.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허덕이면서도 외손주를 끔찍이 여기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또 피해자 부모의 억울한 그 울음을 가슴 아프게 지켜봤으면서도 그 사건이 외손주의 장래에 걸림돌이 될까 합의금 500만원을 겨우 마련한다. 세상이 지천에 깔린 꽃들마냥 아름다운 줄만 알았던 미자에게 자신의 코 앞에 닥친 현실의 세상은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으며 그런 곳에서 자신은 시를 쓰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야하는 모순은 미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시가 쓰여지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던 미자가 시를 완성하던 그 날 밤.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집의 식탁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시를 완성하는 미자. 지금까지 참아왔던 가슴 속의 이야기들이 쉼없이 써내려져 간다. 외손주를 경찰에게 넘기고 난 후였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줄 아는 마음이다.
진실로 그것이 아름다운 한 줄기 섬광이 되어 가슴 속으로 스며들고 아직은 옅기만 한 그 섬광 한 줄기를 한 줄의 시로 표현하는 것, 그것은 모든 예술의 기본이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누군가가 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 영화를 소유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절대 내색하지 않는 미자의 진심을 읽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진심과 한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떠밀려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손자의 잘못을 봐달라고 사정하기 위해 찾아가던 걸음 도중,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자연의 정취에 도취된 자신의 생각들을 쏟아내어 놓고 돌아서던 길에 보였던 그녀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피해자 부모에게 해야할 말은 하지 않고 엉뚱한 말들만 해서 지었던 표정의 정도를 넘어선 당혹감을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분명 떨어진 살구를 보고 느꼈던 자신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 부모를 세워다놓고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후에 피해자의 부모는 미자를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연민의 눈빛을 보낼 수 있었다. 진심과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어쨋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며 짧았던 밤길을 걸으면서, 참으로 소담하면서도 광활한 영화 한편을 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만족인 영화이다. 모두가 꼭 보길..
블로그 보관함
-
▼
2010
(96)
-
▼
5월
(18)
- 이미지 라는게 연예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인간관계에서도 존재하는 게 ...
- 습관은 항상 그렇다. 상대의 사소한 습관의 발견은 언제나 흥미롭다. 내가 이 사람의 습관을...
- 맛있는 거 먹고 싶다.좋아하는 누군가와 마주보며 별 것도 아닌 얘기에 시시덕거리면서너와 함...
- 애기를 때리는 엄마를 봤다. 4~5살쯤 된 아이였는데, 처음엔 등을 돌리고 있어서 꾸짖는 ...
- "이미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일기를 적거나 편지를 쓰거나 그런 일에 자주 매달리는...
- “글 쓰는 과정은 언제나 폭로의 과정이며 그것은 상처받기 쉬운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
- 시간이 추억으로 쌓이듯, 하루를 이루는 시간들이 먼지로 쌓여가듯, 어쨋거나 무언가가 지나가...
- 이창동 감독의 <시>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생시절 문...
- 사랑하는 남자는 연인의 '결점'에만, 여자의 변덕과 약점에만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얼...
- 그래서 어른들의 세계를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아이들의 솔직함이 때론 잔혹함이 될때가 있다....
- 죽느냐 사느냐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 나오는 미오와 타쿠미의 사랑에 흠뻑 빠지고 나서 현실의 사랑을...
- 아무도 모른다도시 한복판. 해가 뜨는 아침에서 어둠이 잦아드는 저녁이 될때까지 나의 존재를...
- 상상력
- 그럴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는 우물은 너무나 좁은 거 같다. 세상엔 나만의 시...
- 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어제 시작되었다. 마침 가까운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지라 오늘 일 마치고...
- 김기영의 하녀김기영의 '하녀' 속의 하녀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와도 같다. 순간 순간 일...
- gmail 만들다
-
▼
5월
(1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