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9일 수요일

죽느냐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잔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속마음으로 참아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또는 난관의 바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고
맞싸워 없애 버리는 것이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자는 것. 그것 뿐이다.
육체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속아픔과
천만 가지 괴로움을 잠으로써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열렬히 희구할 종말이 아닌가 !
죽는 것은 자는 것. 자는 것은 어쩌면 꿈 꾸는 것.
그렇다. 거기 문제가 있다. 이 썩을 인생 잡답을 벗어 던진 후
그 죽음의 잠 속에 무슨 꿈이 생길지,
그래서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오래 살아야 한다는 불행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채찍과 멸시, 압제자의 횡포,
교만한 자의 작태, 무시당한 사랑의 아픔,
법의 지둔한 원조, 관리의 건방진 꼴,
참을성 있는 착한 이가 못난 놈에게서 받는 수모..
누가 이 따위들을 참겠는가 ? 만일 단도 하나만으로
스스로 자신을 잠재울 수 있다면, 누가 짐을 지고,
피곤한 목숨에 눌려 끙끙대며 땀 흘리겠는가 ?
죽음 후에 있을 그 무엇에 대한 두려움,
아무 길손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그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흔들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불행을 재촉하느니
차라리 주어진 불행을 참으라 하지 않는다면 -
이리하여 깊은 사색은 우리를 모두 비겁자로 만들고,
그래서 서슬 푸른 결단의 색깔이
창백한 사색의 색깔에 덮여 빛을 잃고
의기 충천하던 굉장한 계획도
이것 때문에 그 힘찬 물결이 꺾이고
행동이라는 이름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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