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르다.' 라는 말은 사실 '타고나길 모두가 다른 사람이었다.' 라고 단순한 해석보다는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 온 시간들과 경험들이 다르고, 그것들을 떠올리는 가치관과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달라진다.' 라는 해석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외면하는 영화를 보고 나온 다섯명의 친구들 중 모두가 그랬듯 그 영화를 폄하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 영화를 통해 깊은 감명을 받고 나오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 영화 속에서 보편적으로 이해 받을 수 없었던 기억 속의 자신을 찾았을 것이고, 그를 통해 일종의 동질감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잠재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며 또한 그를 통해 자신과 동일시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간혹 우리는 무비판적인 흡입력으로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영화 속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심하게는 영화 속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어찌보면 이건 그리 새로운 경향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모두가 어림짐작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까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사실이 아닌가.
아주 사소한 예를 들자면,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상의 영화를 보고서도 그것이 가짜의 세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에게 아직 임의의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이 발달되지 않아서이지, 영화 '극장전'의 동수의 경우처럼 생각하지 않고서 무작정 현실의 세계에 가상의 세계를 동일시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다,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또 관객들은 자신을 위해 영화를 보러오고, 그 영화 속에서 자신과 자신만의 생각을 찾고선 극장을 나선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이 말은 아마도 홍상수감독이 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이 말이 영화 '극장전'을 보는 내내 수도 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상수감독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어쨋거나 내 생각 속에선 이 말이 '극장전'을 쏙 빼닮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동수는 선배의 회고전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그 영화가 자신과 쏙 빼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영화를 본 듯한, 영화 속의 여주인공으로 연기했던 영실을 보고선 그녀를 뒤쫓아간다. 그녀를 보고는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이 선배의 영화를 기념하며 촬영현장을 둘러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수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중에는 영화에서처럼 그녀와의 잠자리를 요구하고선 같이 죽자고 말하지만, 그런 그에게 그녀는 영화를 잘 못 본거 같다는 말을 남기고는 떠난다. 그리고 동수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생각을 해야 내가 살 수 있어, 생각을 해야해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실 동수의 오도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은 영화의 무자비한 동일시와 관련이 크다. 영화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 내용물들을 한차례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러보지도 않고서 무조건적으로 그를 수용하고 일체화시켰을 때의 고립을 홍상수감독은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 영화가 그의 삶과 기억에 굉장히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 그를 통해 깊은 감명과 감동을 받아서 그런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추상성에 대한 말이지, 동수처럼 현실과 가상을 혼돈하면서까지 현실에서 추상성을 인정받기란 꽤나 힘들기 때문이다. 덧붙여 극장 속의 인물들은 실제가 아닌 연기를 하는 것이며, 나 자신 또한 그것이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과는 아주 다른 세계를 맛보러 들어간다는 부분은 인정하고서 극장을 들어선다.
영화관을 처음 들어섰던 유년이 기억난다. 2시간여동안을 달콤한 나만의 환상 속에서 젖어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려했을 때의 그 허무함.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영화의 존재 이유가 되는 듯하다. 현실을 거스름을 인정하면서 영화를 바라보면서 얻는 그 짧은 달콤함, 쾌감, 그것들을 느끼러 우리는 극장을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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