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했던 순서가 아닌데 그냥 귀찮아서 냅둔다..)
그저께 새벽, 추천받은 영화 '토니 타키타니'를 보았다. 가벼운 러닝타임 덕분에 가벼운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꺼란 생각은 아주 잠시, 보는 내내 영화와 이미지에 대한 혼란을 느꼈다. 이 영화는 몇 장의 사진과 아주 단편적인 영상에 서정적인 음악이 어우러져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강처럼 한 줄기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는 일반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이야기가 진행되어간다는 느낌보다는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든, 아주 짧은 단편의 영상이든 어쨋거나 토막, 토막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일반 스토리를 말하는 영화들에서는 두드러지게 느낄 수 없었던 이미지가 주는 세기가 유난히 강하게 다가왔다. 그런 외로움과 고독을 말하는 이미지들의 한 묶음을 보고 있자니,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과 함께 영화 속에서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미지들의 향연인 영화를 처음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스토리를 위한 이미지를 사용한 경우였지, 이번처럼 스토리보다 이미지가 중시되는 경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색하고, 음악이 어우러진 이미지 전시회를 봤다고 말하는게 오히려 적당한 영화, 토니 타키타니. 그 속의 이미지들은 위의 캡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군더더기없이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청취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설정과 탁한 잿빛의 배경이 어우러지면서 그 속에서 외로운 주인공의 뒷모습이 더욱 처연하고도 처절하게 느껴진다. 배우의 정면 모습보다는 측면이나 뒷모습이 많이 쓰이면서 직설적으로 감정을 주기보다는 다소 간접적으로 그렇기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 그에 대한 결핍을 보는 이의 감정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게끔 유도해준다.
그런데 인물의 고독과 외로움은 항상 저런 느낌이어야 하는걸까? 어떻게보면 저건 이미지가 갖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아닌가? 그러니까 정확하게 다시 말하자면, 영화라는 통로를 사용해 인물이 현재 지니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이 영화가 고독과 외로움을 만들어내는데에 한계를 갖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결코 이미지를 통해 영화를 말하는게 나쁘다 혹은 잘못되었다 라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단지, 내 생각에는 이왕 들어선 영화라는 통로에서 인물의 감정을 적나라한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기 보다는 그 감정을 보는 이가 유추할 수 있게끔, 인물이 겪는 사건들과 그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낭에 한보따리 식량과 짐을 짊어지고서 집을 나온 철 없는 십대소년이 해가 지기 시작하자 뿔뿔이 저마다의 집으로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저 외로운 것이 아니라 떠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불끈 주먹을 쥐고 오른 뒷산에서 굴러 넘어지면서 배낭을 잃어버림으로써 어두워 길도 보이지 않고 축축한 산 중에 홀로 남아 있음을 본인이 깨닳을 때, 우리는 소년의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집은 나옴으로써 일종의 자신의 인생에서 버린 일부분이 되었지만 아끼고 아끼는 물건들을 담은, 자신의 마지막 보물로써 여겨지던 가방을 잃어버림으로써 그가 느꼈을 허탈감과 외로움과 주인을 잃었을 가방과 같이 자신 또한 가방에게서 버려졌음을 다시 한번 더 상기 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인물의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 중 나는 인물이 직접 그 사건 속에 휘말리고 그 사건이 인물의 태도와 감정을 유도케하는 방법이 그냥 보여주기 형식보다는 훨씬 인상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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