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저번에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다. 막 영화관에 도착하였을 때가 벌써 영화가 시작된지 2분정도 경과한지라 처음 보려고 했던 하녀는 포기하고 다른 것을 봤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하녀 앞부분에 중요한 내용 없던데, 그냥 들어가서 보지그랬어, 다들 이런 반응이었다. 어... 그런데 오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앞 부분, 쓸모없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영화 전반에 걸친 상징적 느낌이 강하던데? 한 씬에 담긴 두 가지의 상반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을 하는 여자들과, 유흥과 소비를 즐기는 여자들. 일을 하는 여자들 그 속에는 주방일 하는 사람의 신분으로 은이가 첫 얼굴을 내민다. 시종일관 시끌벅적한 거리의 분위기 속을 일시 잠재우는 것은 한 여자의 자살. 하지만 이도 잠시뿐, 사람들은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죽은 그녀를 바라보곤 멈추다 만 수다를 깔깔거리며 지나간다. 슬픈 분위기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죽어있는 그 자리에만 깔려져있는 정적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갈 뿐이다. 그 장면을 본 은이의 한마디, 야 구경가자. 일종의 암시이자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죽은 그녀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새벽의 그 거리를 다시 찾아와 지켜보았던 은이의 모습이..
김기영의 하녀와 임상수의 하녀를 비교하지 않겠다. 한 가정에 하녀가 고용된 후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뿐이지, 두 영화가 말하는 방향과 초점이 너무나 상반되기 때문이다. 다만 임상수의 순진하면서도 착한듯 맹한 은이의 캐릭터가 김기영의 하녀와 유사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주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고봐도 무방하다. (김기영의 하녀는 맹하면서도 도발적인 팜므파탈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가 변했다. 김기영이 하녀를 말했던 60년대와 지금 우리들이 하녀를 말하는 방식은 아주 달라졌다. 고급 저택의 하녀로 고용되어 들어 온 은이에게 해라는 품격있는 고상한 말투로 자신의 속옷 빨래를 시킨다. 그리고 돈을 받고 당연하게 일하는 그녀에게 친절히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그녀는 결코 은이를 막대하지 않는다. 해라의 남편인 훈 조차도 하녀라는 신분을 가진 그녀에게 막 대하는 법이 없다. 다정한 말투로 무언가를 시킬때도 강제적이기보다는 부드럽고 친근하다. 그들의 아이는 또 어떤가, 예의바르며 사근하게 군다. 그런 아이가 은이 또한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친절은 은이가 훈과의 성적인 관계를 맺고 또 그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180도 바뀐다. 해라와 해라의 모(母)는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는 은이에게 보이지 않는 수를 써 아이를 유산시켜버리고,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그런 하녀의 신분을 짓밟는 말과 행동들을 서슴치 않고 행한다. 이런 그들의 변화는 원인과 결과가 따로 없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의 친절은 자신들의 품격과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도구였을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마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자신의 계급과는 전혀 다른 미천한 하녀라는 신분에 대한 의식을 품어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줌 지린 더러운 속옷을 손으로 직접 빨래하는 여자에 대한 그들의 막돼먹은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있는 자들은 있는 자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우아한 식사를 하고 고상하게 책을 읽으며 그림들을 감상하고 또 베토벤을 연주하고 듣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친다. 남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은 남을 높여주는거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라고. 그들의 예의는 주위의 존경을 바라고 행하는, 자신들만의 고품격적인 세계를 창출하고자하는 일종의 계산된 행동이다. 은이가 마지막까지도 착각했던 그들의 진심 어린 친절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또한 그들 나름의 계급 나누기 방식이며 그 속에서 은이는 그들을 조롱하고자 복수를 도모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보는 그 앞에서 자살을 하는 것. 보란 듯이 자살을 하는 거다. 그러면 아마 그들은 그들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살아가겠지, 란 생각을 했을거다, 아마도 은이는.. 하지만 그들의 세계를 조롱하려했던 은이는 되려 조롱을 당하고 만다. 결국 은이는 그들이 떠난 허황된 그들의 공간 안에서 처참하게 죽어간다. 그리고 은이의 예상과는 아주 다르게 그들은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물론 이 또한 가식이지만) 다른 하녀들 앞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며 또 다시 자신들의 세계에 금을 긋는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해라와 훈의 아이의 모습은 참으로 끔찍했다. 은이는 마지막까지 그래도 그 아이만큼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고마워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면 그 아이의 친절이 정말 진심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그 아이가 미래의 해라와 훈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될 거란 무서우면서도 검은 기운이 감돈다.
임상수의 하녀는 욕망을 말하기보다는 계급을 말한다. 자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지금 이 사회를 임상수를 조롱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국 별다른 대책없이 절대적으로 있는 자들에게 없는 자는 조롱당할 수 밖에 없는 허무함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허무함 속에서 이 영화가 사회로부터 건진게 있다면 그건 다시 있는 자들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극 속에서 은이가 성공하지 못했던 그들을 향한 조롱을 현실 속의 관객들이 극 속의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조롱하는 것이다. 극 속에서 치졸한 냄새를 풍기며 대단하게도 자신들의 바운더리를 완성했던 해라와 훈과 미래의 그의 아이들을 보며 현실의 우리들이 품는 조롱만큼이나 대단한 힘을 가진 조롱 또한 없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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